우리 정부가 쌀 관세화(수입자유화) 유예 협상의 막판 쟁점인 의무수입물량(TRQ)의 국가별 물량 배정 문제를 매듭짓는 과정에서, 캐나다와 인도 등에 대해 쌀 이외의 다른 품목을 양보하는 이면합의를 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6일 농림부와 농민단체에 따르면 미국, 중국이 우리 정부에 관세화 유예에 동의하는 조건으로 요구 중인 ‘TRQ 물량 의무 배정’이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둘러싸고 정부와 농민단체 사이에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농민단체 입장을 대변하는 송기호 변호사는 최근 국회 토론회에서 "정부가 미국과 중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관세화 유예 시 내년부터 이들 나라에 TRQ의 일정비율을 우선 배분하려고 하지만, 이는 회원국 모두를 차별 없이 대우해야 한다는 WTO 규정에 위반된다"고 밝혔다. 그는 "WTO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불리한 조건의 쌀 협상을 연말까지 끝내려는 정부 방침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송 변호사의 주장에 대해, 농림부 관계자는 "WTO 규정 위반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WTO 전신인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규정을 인용해 "WTO가 원칙적으로는 차별을 금지하지만, 쌀 협상에 참여한 9개 국가 모두가 물량 배정에 동의하면 규정 위반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개방 반대론자들은 "WTO 규정 위반이 아니라는 정부 주장이 사실이라면, 정부 스스로 이면합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정부는 그동안 쌀 협상에서는 쌀 이외 다른 품목은 논의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으나, 특정 국가에 TRQ 물량 배정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다른 품목에서의 추가 양보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농민단체 등에 따르면 현재 중국과 미국이 각각 TRQ의 70%와 50% 배정을 요구 중인 것을 감안하면, 나머지 7개 협상 국가들은 적정 수준의 TRQ를 배정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예 배정에서 제외될 수도 있다.
따라서 9개 국가 모두의 동의를 받아 관세화를 유예 받으려면, 미국 중국에 밀려 쌀에서 실리를 챙기지 못한 나머지 7개 국가에 대해 다른 품목에서의 양보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캐나다와 이집트, 파키스탄 등 쌀 수출 실적이 전무한데도 막판에 쌀 협상에 참가한 일부 국가의 경우 다른 품목 농산물에 대한 검역·검사 완화, 관세인하 등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쌀 이외 다른 품목이 포함된 양자 현안은 논의하지 않는다는 게 기본 입장"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통상협상의 성격상 암묵적 수준의 이면합의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 평가이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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