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사에서 서로 생명력을 갖기 위해, 그리고 서로의 고유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갈등의 영향력이 필요하다. 동시에 수반돼야 하는 다른 목적을 배제하고 좋은 목적 하나만 배타적으로 추구하면, 하나는 과다해지고 다른 것은 부족해질 뿐만 아니라 원래 배타적으로 추구하던 목적도 부패하거나 상실하게 된다." 영국의 철학자 겸 경제학자 존 스튜어트 밀이 140여 년 전에 한 말이다.우리의 현재는 어렵고, 미래는 어둡고, 국민의 불만은 넘쳐 난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책임은 현 정권에 있다. 그들이 국정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 정권의 문제가 무능과 신뢰상실에 있다고도 하지만, 진정한 이유는 독선에 있다. 독선으로 인한 판단력 부족이 현 정권의 무능과 신뢰상실의 원인이다.
갈등(대립, 모순)은 나쁘고 화합은 좋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갈등은 인간사에서 지극히 정상적이며 일반적 현상이다. 이해관계, 취향, 가치관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갈등이 문제가 아니라, 갈등을 어떻게 인식하고 대처하느냐가 문제이다. 갈등을 상생의 눈으로 보면 상생의 갈등이 되고, 증오의 눈으로 보면 적대적 갈등이 된다.
‘상생의 갈등’은 서로 상대방이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 줌을 인정하고,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갈등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현재 우리사회의 여러 갈등은 우리사회의 건강과 발전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촉진하는 것들이다. 진보주의자의 이상 없이 보수주의의 현실주의만이 지배하는 사회는 안일과 부패에 빠져 퇴보할 것이며, 보수주의자들의 신중함과 현실성으로 보완되지 않고 진보주의자들의 이상만으로 추진되는 개혁은 시행착오와 혼란만 초래할 것이다. 자유의 고려 없는 평등만의 추구는 모두를 나태하고 가난하게 만들 것이며, 평등의 소중함을 망각한 자유만의 추구는 천박한 이기주의로 타락할 것이다. 근로자 없는 기업이 존재할 수 없을 것이며, 경영자 없이 근로자들만으로는 기업을 꾸려 갈 수 없을 것이다. 노인의 지혜와 청년의 순수함이 서로 돕지 않는 사회는 절름발이가 될 것이다.
이와 반대로 ‘적대적 갈등’은 상대를 적으로 보아 증오하고 공격해 없애려 한다. 강자가 약자를 정복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양 쪽 모두 상처를 입고 패자가 된다. 적대적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탐욕, 증오, 그리고 무엇보다 독선에 사로 잡혀 상대방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양쪽 모두를 살리는 상생의 갈등이 되느냐, 아니면 양쪽 모두 망하는 적대적 갈등이 되느냐는 당사자들의 선택, 특히 주도권을 쥔 쪽의 선택에 달려 있다.
현 정권은 주로 적대적 갈등의 시각에서 국정을 운영하는 것 같다. 이해찬 총리의 발언에서 나타난 것처럼,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공격한다. 그러나 여권의 이러한 공격은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추진하는 현 정권의 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수도 이전은 이미 좌절됐고, 이른바 ‘4대 개혁 입법’의 추진도 성공하기 힘들다. 민주국가에서 민심 잃은 정권은 기름 떨어진 자동차와 같다. 지난 50년간 우리나라에서, 국민의 뜻을 거스른 정권은 모두 국민들에 의해 무너졌다. 권력에 도취하면 세상이 동전 만하게 보이겠지만, 권력은 연예인의 인기처럼 허망한 것이다.
당신은 좌익이냐 우익이냐 라는 질문을 받고, 미국의 인권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는 "새는 양쪽 날개로 날아간다"고 답했다. 집권은 하늘이 내린 은총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현 정권은 독선과 증오를 버리고, 고생했던 과거를 잊어버리고, 열린 마음으로 상생의 시각에서 국정을 운영하길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와 민족뿐 아니라 현 정권에게도 불행이 될 것이다.
이근식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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