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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겨울 연가'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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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겨울 연가'의 추억

입력
2004.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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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관광택시 운전기사가 일본 여성들의 ‘욘사마 열풍’을 실감나게 설명했다."올 한해 동안 일본 관광객들을 태우고 남이섬에 간 것이 백번은 될 거예요. 이 불경기에 ‘욘사마 열풍’이 우리를 먹여 살렸다니까요"

그는 세 번이나 남이섬을 찾아가는 일본 여성 두 명을 안내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무엇이 그렇게 좋아서 남이섬에 자꾸 가느냐"고 물었더니 "자꾸만 가고 싶어서"라고 그들은 대답했다고 한다. 30, 40대로 보이는 그들은 조용하고 수수해서 오빠 부대 같지는 않았다고 한다.

남이섬을 찾는 일본 여성들은 ‘겨울연가’에서 준상 역을 맡은 배용준과 유진 역을 맡은 최지우가 데이트하던 숲길을 산보하고, 첫키스를 나누던 곳에서 사진을 찍고, 춘천에 있는 ‘준상이네 집’에도 가 본다고 한다. 어느덧 남이섬은 ‘첫사랑의 성지’가 된 걸까.

2002년 1월부터 KBS가 ‘겨울연가’를 방영하는 동안 우리나라 여성들도 열병을 앓았다. 수많은 여성들이 드라마를 보며 눈물흘렸다. 첫사랑의 추억이 있는 사람은 그 추억 때문에 울고, 첫사랑의 추억이 없는 사람은 추억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울었다.

‘겨울연가 현상’이 2002년 겨울 한국을 휩쓸었다. 가슴에 멍이 든 것처럼 계속 아프다는 여성들이 늘어났다. 80, 90대의 할머니가 ‘겨울연가’를 보며 "나도 저런 남자와 연애 한번 해 봤으면"하며 한숨지었다는 얘기도 들렸다. 준상의 두터운 털목도리 패션이 거리마다 넘쳐흐르고, 준상이 유진에게 선물한 ‘폴라리스 목걸이’가 불티나게 팔렸다.

‘겨울연가’의 힘은 무엇이었을까. 일본열도를 강타하고 있는 ‘욘사마’ 열풍을 보며 새삼 2002년 겨울을 되돌아보게 된다. 순수함, 젊은 날, 영원한 사랑… 그 모든 것에 대한 원초적인 그리움을 자극하고, 그 그리움으로 많은 사람을 울게 했던 것이 ‘겨울연가’의 힘이었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서 NHK 위성방송과 지상파를 타고 ‘겨울 소나타’란 이름으로 3차례나 방영된 ‘겨울 연가’는 한국에서보다 더 요란한 폭발력으로 일본 열도를 강타하고 있다. 2년 전에 이미 ‘겨울연가’ 열병을 앓았던 한국 여성들로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열기다. NHK는 이달 말부터 네 번째로 ‘겨울 소나타’를 방영한다니 그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만하다.

얼마전 KBS가 ‘겨울 소나타’ 열풍을 특집으로 보도한 적이 있는데, 일본의 작은 도시에 사는 한 여성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혼하고 두 아이와 함께 사는 나는 대인기피증에 걸려 고독한 생을 살고 있었다. 어느날 우연히 ‘겨울 소나타’를 보게 된 나는 울기 시작했다. 드라마가 계속되는 몇 달 내내 울면서 나의 대인기피증은 치유됐다. 나는 이웃을 만나 ‘겨울 소나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즐겁다. ‘욘사마’는 내 생의 은인이다."

며칠 전 한 신문에서 읽은 강은교 시인의 글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왜 엉엉 울며 나무 밑으로 내려왔을까. 오후의 공원엔 아무도 없었다. 맘대로 소리내어 울면서 언덕을 내려오고 나니 참 마음이 가벼워졌다…. 나는 낙엽을 만졌다. 그러자 더 서러워져서 또 울었다….’

강은교시인은 울음의 정체를 따로 밝히고 있지만, 나는 그 글을 읽으며 좀 엉뚱하게 ‘욘사마 현상’을 떠올렸다. 우리들 마음 속 깊이 고여있다가 어느 순간 이유도 분명하지 않은 채 터지는 눈물, 울면서 자신을 정화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이 바로 ‘겨울연가’가 아닐까.

추위에 얼어 크리스탈처럼 청순했던 최지우, 추위 속에 더욱 따듯하게 느껴졌던 배용준, 환상처럼 아름다웠던 눈 쌓인 숲…. 이 모든 것을 만들어 낸 윤석호 감독과 작가 오수연 김은희 윤은경씨 등을 다시 생각해 본다. 쓸쓸한 이들을 열광하게 하고 스스로 치유하게 하는 대중예술의 힘은 아름답고 위대하다.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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