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중에는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이 낮다"며 당분간 남북정상회담 추진의사가 없음을 시사한 노무현 대통령의 3일 영국 런던 발언의 진의와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청와대는 그 동안 정상회담 전제조건으로 ‘6자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 해결의 돌파구가 열리거나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을 때’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러나 이번 발언은 기존 입장에서 한 발 후퇴한 것이다. 북핵 문제 해결에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정상회담이 성사된다고 해도 실익이 없다는 현실론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특히 "북핵 문제는 6자회담의 틀 내에서 평화적 외교적으로 해결한다"는 지난달 칠레 한미정상회담 합의에 충실하겠다는 의지로도 읽힌다. 어렵게 조성된 북한에 대한 유화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북미간 대화를 일단 지켜보겠다는 뜻도 있는 것 같다.
과열양상으로 치닫는 정상회담 추진론에 대한 속도 조절 의도도 엿보인다. 광복 60주년에 6·15 남북공동선언 5주년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큰 2005년에는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정부 안팎에 팽배하다. 일부 정치인들은 정상회담 추진을 기정 사실화하면서 앞서 나가고 있다. 노 대통령으로서는 이 같은 분위기를 가라앉혀야 할 필요성도 있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 들이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미국 대선 이후 정부가 북핵 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복원을 위해 뛰고 있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감지되기 때문이다. 일련의 조건 없는 대북지원, 정부 고위 관계자의 북측 인사 접촉 시도설 등이 일례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남북관계가 6개월째 경색되는 데 실질적 영향을 미친 김일성 주석 조문파동과 탈북자 대거 입국에 대해 "안타깝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재차 밝힌 것도 심상치 않다. 북한의 요구사항을 수용한 만큼 남북대화에 나서라는 이야기로 들린다. 남북대화 복원은 북핵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것이고 결국 정상회담 분위기 조성으로 이어질 게 분명하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정상회담에만 매달리지 않겠다"면서도 "정상회담과 관련해 진행되는 것은 없지만 우리가 계속해서 (대화재개) 신호를 보내는 상태"라고 밝혔다. 결국 노 대통령의 발언은 정상회담을 둘러싼 갖가지 돌출상황을 재정비한 뒤 착실히 정상회담 준비 수순을 밟아가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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