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녀(1914~1984)는 운보 김기창과 더불어 수묵채색 화단에서 가장 촉망 받는 화가였으나 그의 이름은 오랫동안 잊혀졌다. 월북 작가였기 때문이다. 지금 그는 미술동네에선 제법 알려졌지만, 여전히 북한에서의 작품활동은 알려진 바 없고 대중에게도 낯설다. 그런 정종녀를 최열 가나아트센터 기획실장은 20세기 전반 미술사에서 높이 대접하고픈 화가로 쳐준다.‘화전’은 19세기 전반 쌍벽을 이룬 우봉 조희룡(1789~1866)과 추사 김정희(1786~1856)에서 출발, 19~20세기 화가 28명의 평전을 묶은 책이다.
민중미술운동에 참여했던 저자가 주목하는 화가들은 예사롭지 않다. 가령 산수화나 사군자가 아니라 인물화에서 대가를 이룬 채용신(1850~1941)을 장승업과 비등한 위치에 놓고 있다. 초상화 한 점에 쌀 250가마를 받았다는 채용신이 최익현 같은 항일지사에게는 그림값을 받지 않았다는데, 그러한 정신이 80년대 민주화운동 현장에서 시대를 담은 인물화를 가까이한 저자의 체험을 자극한 모양이다. ‘전대미견(前代未見)의 작가’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사후 100년이 지나서야 주목 받기 시작한 홍세섭(1832~1884), 윤희순(1902~1947) 등 화단과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한 작가들에 대한 애정도 각별하다.
출간기념전도 10~15일 가나포럼스페이스에서 열린다.
문향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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