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구(36)의 얼굴을 처음으로 칭찬했던 이는 고 유영길 촬영감독이었다. 유 감독은 ‘꽃잎’에서 주인공 이정현의 오빠로 잠깐 출연했던 그를 보고는 "경구야, 나는 니 얼굴이 진짜 좋다. 니 얼굴은 거지부터 왕자까지 다 할 수 있는 얼굴이다"라고 말했다. ‘박하사탕’에 캐스팅 됐을 당시 "왜 나죠?"라는 질문에 이창동 감독은 "평범해서. 무엇이든 담기 편한 얼굴이라서"라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너무 평범해서 좀처럼 캐스팅이 되지 않던 얼굴. 그 덕에 배역을 맡을 때마다 그는 온전히 영화 속 주인공으로 변할 수 있었다. ‘역도산’(송해성 감독·15일 개봉)에서도 그는 설경구의 얼굴은 내려 놓고, 1950년대 일본 열도를 뒤흔들었던 프로레슬러 역도산, 그 슬픈 영웅을 자신의 얼굴에 담아낸다."‘역도산’은 왜 안 한다고 하다가 결국 했냐, 왜 힘든 거만 하냐, 너무 안 쉬는 거 아니냐…." 소파에 푹 파묻혀 있던 그는 갑자기 엉덩이를 뒤로 빼며 "이미 너무 많이 답했던 질문, 벌써 지겨운 질문이에요"라고 한다. 살 얘기로 넘어가자 그는 "작품을 하려고 살을 찌운 거지…. ‘살 이벤트’를 한 것도 아닌데 너무 살에 관심이 많으시네요"라고 눙친다. 그래도 어찌하랴. 프로레슬러 역도산으로 변하기 위해 무려 20㎏이나 늘려 90㎏대의 몸집을 만들어낸 그는 마치 외계인 같다. "뭐, 많이 먹고 조금 운동하면 살 찌는 거고, 조금 먹고 많이 운동하면 빠지는 거 아닌가?" 도리어 싱겁게 대꾸하니 할 말을 잃을 뿐이다.
"하다 하다, 숨이 넘어갈 것 같으면 ‘컷’인 거고 숨이 남아 있으면 그냥 가는 거지, 뭐 딴 게 있겠습니까." 프로레슬러 역, 그 어느 때보다 체력 소모가 컸다. "최고 멋진 액션장면으로 꼽는 게 ‘올드보이’의 장도리 액션신$ 흠, 정말 멋지죠. 헐떡이는 숨소리… 턱까지 숨이 찰 정도로 갈 때까지 싸운 그 분위기가 멋지더라 이겁니다. 호흡이 액션의 진수더라구요." 설경구는 그래서 프로레슬링 장면을 끊어 찍지 않고 롱테이크로 촬영했다. 무려 3분20여초, 링 위 때리고 구르며 정말 곧 죽을 듯한 그 표정을, 헉헉 가쁜 숨소리를 고스란히 영화에 담았다.
영화를 찍을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느냐고 물었더니 "작품에 따라 다르다"고 말한다. "그래도 대본 보고 고민하고 그런 건 없어요. 연기에 정답이 없으니 고민이 무슨 소용인가…. 일단 현장으로 달려가고 보는 거지." ‘공공의 적’ 이나 ‘광복절 특사’ 의 경우 즐기면서 찍었고 ‘박하사탕’은 자학하며 찍었다. ‘오아시스’는 미세한 감정을 잡아내지 못해 힘들었다. " ‘역도산’은 어느 쪽이냐 하면, 매우 스트레스가 컸죠. 육체적으로 힘들었고 대사 대부분이 일본어라 그것 역시…. 영화사 연출부에 재일동포가 한 분 있어요. 그 분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고 하셔서 좀 안심입니다."
‘영화배우’는 이제 그와 뗄 수 없는 익숙한 수식어다. 하지만 그는 영화를 업으로 삼을 줄 정말 몰랐다. 단역으로 출연할 때는 "부수입이 생겨 기뻤을 뿐"이었다. 내 영화라는 애착도 없었고 개봉 날짜도 관심이 없었다. 한양레파토리, 극단 학전 등에서 연극하며 먹고 살만큼 월급 받았고 ‘지하철 1호선’ 공연 때는 김민기 대표보다 많은 돈을 벌었다. 연극배우로 평생을 살 것 같았다. ‘처녀들의 저녁식사’를 찍은 후 ‘역도산’ 제작사인 싸이더스의 차승재 대표(당시 우노필름 대표)가 "앞으로 세 작품만 더 하자" 했을 때도 머리 속에는 "우와, 일년에 세 편이면… 한 편에 적어도 400만원만 쳐도 도합 1,200만원?"이라고 계산기를 두드렸다. 수입 좋은 아르바이트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연극 무대가 어색하고 카메라 앞이 편하다. "2001년, ‘지하철 1호선’ 독일 공연할 때 무대에 섰는데, 연극 발성을 이미 다 잊었더라구요. 그 때 다들 ‘니가 연극 다 조져놨다’고 하대요. 흐흐."
순제작비만 100억원이 넘게 든 대작 ‘역도산’은 6일 국내외 언론과 영화 관계자를 대상으로 하는 월드 프리미어와 함께 처음으로 선을 보인다. 매우 떠들썩한 프리미어가 부담이다. "뭐, 대단한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냥 영화 중 하나지, 뭐. 그냥 ‘ 뼈 빠지게’ 고생한 영화지 뭐." 오히려 여유롭다.
최지향기자 mist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