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를 일컫는 홍안(紅顔)이니 기녀를 꾀꼬리에 빗댄 앵연(鶯燕)이니 하는 옛말들이 무시로 등장하는 취교전(翠翹傳)은 베트남 고전소설의 백미다.더 소상히 말하자면 완유(阮攸·1766~1820)라는 베트남 벼슬아치가 청나라를 사신으로 다녀오는 길에 입수한 ‘김운교전’(金雲翹傳)이라는 한문소설을 번안한 운문 소설이다.
그렇다고 하품만 연방 해대던 고전문학 수업 시간을 떠올릴 필요는 없다. 용왕을 만나 단번에 신분 상승하는 우리의 심청전보다 한층 현실적이고, 신데렐라 이야기만 죽어라 해대는 21세기 한국 드라마보다 외려 세련됐다.
재색을 겸비했으나 모리배들의 모함 때문에 관아에 갇힌 아비를 구하고 멸문지화의 위기에 처한 가문을 구하기 위해 금석의 맹세를 나눈 김생을 저버리고 은 400냥에 청루(기생집)에 팔려간 취교의 단장비사(斷腸悲史). 자살로 저항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간악한 사기꾼에게 속임을 당하고 손님 중 속생이란 상인의 첩이 되지만 조강지처의 음험한 계략에 빠져 비구니가 된다. 그러다 다시 기녀로 팔려가고 거기서 반란군 두목인 서해의 부인이 돼 권세를 얻고 은원을 그대로 갚아준다. 그녀의 박명은 끝나지 않았다. 어리석게도 서해에게 조정에 투항할 것을 권유, 패망을 불러오고 서해의 비참한 죽음을 목격한 그녀는 강물에 뛰어들고 비구 각연에게 구조된다. 마침내 취교는 김생과 자신의 가족과 재회하지만 풍진에서 벗어나 마침내 불문에 몸을 의탁한다.
여성수난의 이 기구한 이야기를 듣노라면 장탄식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그 한숨 뒤에는 정절보다 사랑에 무게를 두는 시선, 봉건제도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고난과 투쟁하며 마침내 진정한 자유를 얻는 여성의 자의식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기에 ‘취교전’은 사랑과 운명에 대한 정교한 서사로 여전히 현재성을 지니며 190년의 세월을 넘어 매춘여성을 통해 19세기 동아시아의 운명을 읽어냈던 황석영의 ‘심청’(2002)의 상상력과 맞닿아 있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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