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12월4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뉴욕에서 작고했다. 향년 69.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 ‘인간의 조건' ‘혁명론' 따위의 저작으로 20세기 정치철학의 아름다운 성채를 구축한 유대인 여성 학자다. 독일 하노버에서 태어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자란 그녀는 마르부르크대학에 진학해 마르틴 하이데거 밑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유부남이었던 하이데거와 열일곱 살 아래인 아렌트의 관계는 사제 사이를 넘어 연인 사이로 발전했는데, 뒷날 하이데거는 아렌트가 없었다면 ‘존재와 시간'을 쓸 수 없었을 것이라고까지 회고했다. ‘존재와 시간' 초판에 붙어있던 유대인 스승 에드문트 후설에 대한 헌사를 나치 집권 뒤 슬그머니 지워버린 하이데거로서는 대단한 애정 고백이었다.하이델베르크와 프라이부르크에서 공부를 계속해 카를 야스퍼스의 지도로 학위논문을 쓴 아렌트는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서 파리를 거쳐 뉴욕으로 망명했고, 그 뒤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가르쳤다. 20세기 정치이론에 대한 아렌트의 가장 큰 기여는 전체주의 연구에 있다. ‘전체주의의 기원'(1951)으로 한 획을 그은 아렌트의 전체주의 연구는 그가 뉴요커 특파원 자격으로 나치 친위대 장교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취재하고 쓴 기사들을 모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진부성에 대한 보고'에서 더욱 벼려졌다.
그 재판에서 아렌트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인간 도살자로서의 아이히만 이미지와 나치라는 기계의 톱니바퀴에 불과한 실제의 무구한 개인으로서의 아이히만 이미지 사이의 간극이었다. 아렌트는 이 재판을 통해서 나치의 인종학살이 가장 진부하면서도 가장 체계적인, 효율추구적이며 관료주의적인 동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자신의 확신을 더욱 강화하게 되었다. 아렌트의 이 재판 참관기를 일관하는 ‘악의 진부성'이라는 개념은 그 뒤 전체주의와 폭력을 연구하는 이론가들에게 익숙한 용어가 되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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