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지은 사람에게 보다 적절하고 합리적인 처벌을 할 수 있도록 현행 형벌 제도가 대대적으로 손질될 것으로 보인다. 1953년 형법이 제정된 이래 50여년간 부분 개정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형벌제도 전반에 대한 재검토는 처음 있는 일이다.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는 "현재 형법 체계와 각종 형벌 제도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에 따라 법조계와 학계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위원회를 법무부에 설치, 형법체계의 합리적 재정비를 위한 연구·검토작업을 벌이기로 합의했다고 3일 밝혔다.
논의될 정비 대상 형벌 제도는 벌금·징역·명예형과 집행·선고유예 등 형법과 특별법에 규정된 주요 형벌이 모두 해당된다.
우선 벌금형의 경우 현재 죄마다 획일적으로 벌금이 매겨지지만 앞으로는 죄목마다 ‘○일’식의 일수(日數) 형량을 정하고 피고인의 경제 능력을 감안해 ‘1일당 ○원’ 식으로 판결하는 ‘일수벌금제’ 도입이 검토된다. 같은 죄를 저질러 같은 벌금형을 선고받더라도 대상이 재벌 회장이냐 일용직 노동자냐에 따라 고통의 정도는 천차만별일 수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또 벌금을 내지 않을 경우 노역장에 유치하는 대신 사회봉사명령을 부과하는 방안과 현재 징역형 이상에 대해서만 선고하는 집행유예를 벌금형에도 선고할 수 있도록 할지도 논의될 예정이다.
징역형에서는 감형 또는 가석방이 허용되지 않는 ‘절대적 종신형’ 도입이 논의된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사형제 폐지론과 맞물려 사형제의 대안으로 논의될 가능성이 많다. 아울러 현재 최고 15년(가중처벌 땐 25년)인 유기징역의 상한을 상향 조정해 무기징역과의 격차를 줄이는 방안도 연구 대상이다. 노역을 하지 않고 구금만 되는 금고형 폐지도 검토될 예정이다.
현재 집행유예는 유예기간 중 재범하면 또다시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없으나 경미한 범죄에 한해 한번 더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논의된다. 현행법에서 무조건 2년으로 규정하고 있는 선고유예 기간을 ‘6월 이상 2년 이하’로 정해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방안과 실제 법정에서 선고되는 사례가 드문 자격정지 등 명예형의 폐지 여부도 검토 대상에 올랐다.
사개위는 이와 함께 기본법인 형법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각종 특별법의 개폐와 법정 형량 조정도 검토한다는 데 합의했다. 예를 들어 현행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는 1,000만원 이상이면 5년 이상(5,000만원 이상이면 10년 이상)의 징역을 규정하고 있으나 이 법은 제정 당시인 81년의 경제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20여년이 지난 현재 경제수준과 맞지 않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저녁 술자리에서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집단 시비와 폭행에도 가령 맥주병 같은 ‘흉기’를 사용하면 무조건 5년 이상의 징역형을 규정하고 있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도 정비 대상에 올랐다. 이는 형법에서 가장 중한 죄로 여겨지는 살인죄의 경우도 최저 형량이 5년인데 비해 각종 특별법이 지나치게 높거나 낮은 형량을 규정해 법적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비판에 따른 것이다.
사개위는 앞으로 위원회에서 합의한 결론을 법무부 입법안으로 제출해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사개위 관계자는 "당장 모든 관련 법률을 정비해 재입법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집행유예제 정비 등 비교적 논란이 적은 안은 조만간 현실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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