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12월3일 테네시 윌리엄스의 3막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뉴욕의 에셀 베리모어극장에서 초연됐다. 윌리엄스는 그보다 세 해 전 시카고에서 초연된 ‘유리동물원'으로 이미 단단한 명성을 확보한 바 있으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상업적 성공에 더해 퓰리처상까지 받음으로써 그 뒤 미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사람이 되었다.사라져가는 남부의 문화전통과 강렬한 성적 욕망 사이에서 분열하는 여성의 이야기인 이 연극의 제목은 뉴올리언스에 실제로 있었던 ‘욕망의 거리'라는 전차 노선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작품의 주인공은 미국 남부 몰락한 지주 집안 출신의 블랑슈 뒤부아다. 신경증 기질과 창부적 성격을 함께 지닌 그녀는 빛 바랜 과거의 전통과 교양으로 욕망을 억누르며 외롭게 살아가다가, 뉴올리언스에 사는 동생 스텔러를 방문한다. 그녀는 거기서 동생 남편 스탠리 코월스키에게 겁탈당하면서 억제했던 욕망을 분출시키지만, 결국 미쳐서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네 해 뒤인 1951년 엘리아 카잔 감독의 손을 거쳐 영화로 만들어졌다. 비비언 리가 블랑슈 역을 맡고 말런 브랜도와 킴 헌터가 스탠리 역과 스텔러 역을 각각 맡은 이 영화는 아카데미상 12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돼 주연여우상 등 4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국내 극단들에 의해서도 여러 차례 공연되었다. 기자가 이 연극을 처음 본 것은 1977년이다. 극단이 어디였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김애경씨가 블랑슈 역을 맡았다는 사실은 또렷이 남아있다. 최근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약간 주책스러운 ‘아줌마' 역을 곧잘 맡곤 하는 김애경씨 모습을 보노라면, 한 세대 저편의 젊은 김애경씨가 그 위에 포개지며 기분이 묘해진다. 시간과 싸워 이기는 것은 없다. 욕망도 이름도 전차도. 서울 거리에 전차가 다니던 시절이 문득 그립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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