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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비는 바뀌어도 온정은 ‘펄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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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비는 바뀌어도 온정은 ‘펄펄’

입력
2004.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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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그렁 땡그렁…"연말이면 거리에 맑은 종소리를 울리는 구세군 자선냄비가 40년 만에 새 모습으로 2일 거리에 모습을 보였다. 24일까지 전국 76개 시, 읍에서 온정의 손길을 기다릴 273개의 자선냄비는 구형 양철냄비가 아니라, 새로 만든 철제냄비. 구세군은 1965년 제작한 양철냄비를 40년동안 땜질하고 새로 칠을 해 사용해왔으나 너무 낡아 올해 새로 만들었다. 새 자선냄비는 모금함이 사다리꼴로 바뀌고, 양철냄비보다 더 실제 냄비에 가깝고 튼튼하다.

한국현대사의 현장에서 40년을 살다 새 철제냄비에 자리를 내어준 양철 자선냄비는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준 온정의 상징이었다.

한국에 자선냄비 등장은 1928년. 서울 광화문네거리에 나무 막대기에 가마솥을 달고 나왔다. 그것이 1965년 양철 냄비로 바뀌었다. 서울 명동 등에 첫 선을 보인 양철냄비는 당시에는 시대감각에 맞는 세련된 모습으로 겨울철 명물이었다. 가마솥 자선냄비는 일제강점기말과 광복 직후인 1943~1946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3년에는 모금을 하지 못했지만 양철냄비가 등장한 이후로는 한 해도 모금을 거른 적이 없었다.

인심과 세태는 변했어도 양철냄비는 결코 외면당하지 않았다. 65년의 첫 모금액은 15만원. 10전, 50전짜리 지폐가 많았다. 이듬해부터는 새로 나온 1, 5, 10원짜리 동전이 많이 걷혔다. 부자들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보다 더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해 한푼 두 푼 넣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양철자선냄비는 ‘나누는 것이 돌보는 것’이라는 이웃사랑의 대명사였다.

경기가 좋지 않아도 모금액은 계속 늘어났다. 70년에 100만원, 83년에 1억원, 95년에 10억원 선을 돌파했으며 IMF 외환위기가 닥쳤던 98년에도 0.8%가 증가해 훈훈한 이웃사랑을 느끼게 했다. 경제가 어렵다는 지난 해에도 23억7,000만원이나 모였다. 올해 목표액은 24억원.

전국적으로 기부금을 내는 사람이 300여만 명에 이르고, 자원봉사자도 3만 명에 달한다. 양철냄비에 돈을 넣는 사람들은 ‘길을 걷는 사람들’이었다. 차를 타지 않고, 좋은 옷을 입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코흘리개 유치원생, 돼지저금통을 들고 온 초등학생, 허름한 차림의 실직자들도 한푼 두 푼 넣었다.

그러나 가끔은 적지않은 금액을 기부하는 이들도 있었다. 명동에서 17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100만원씩 넣던 할머니가 있었다. 이 할머니가 지난해에는 나타나지 않아 후에 구세군 본부가 수소문해보니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그 아들이 할머니를 이어 돈을 넣고 갔던 것이다. 그 할머니는 숨지기 전 냄비에 넣을 돈을 마련해두었다고 했다.

여덟 살에 구세군에 입교해 가마솥에서, 양철, 철제냄비로 바뀌는 것을 지켜본 김준철 구세군분당교회 담임사관(65·전 구세군사관학교장)은 "새 냄비가 예쁘고 튼튼해 오랫동안 쓸 수 있을 것 같다"며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인심이 아무리 각박해지더라도 조그마한 사랑운동, 나눔운동인 자선냄비 모금활동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경욱기자 kwnam@ hk.co.kr

사진 김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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