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안 무어가 주연한 ‘포가튼’은 최근 할리우드 영화의 한 흐름으로 떠오른 기억과 환상을 다룬 영화들의 유형에 들어갈 만한 영화다.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들며 어떤 묘사도 현재형일 수밖에 없는 영화매체의 장점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이런 유형의 영화는 되풀이되는 반전효과에 기댄 과잉 기교주의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포가튼’은 현란한 스타일로 스릴러와 미스테리 사이의 경계에서 관객을 홀리려 드는 기획의 재미와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노동석의 장편 데뷔작 ‘마이 제너레이션’은 위풍당당한 느낌을 주는 제목과는 달리 이 시대 젊은 날의 초상에 겸손하게 접근한다.
이 영화의 광고문구대로 행복을 사고 싶지만 그걸 사기에는 너무 비싸다고 여길 수밖에 없는 젊은이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들은 물려받은 가난을 이겨낼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저 견디는 것에서 꿋꿋한 젊음의 결기를 갖고 있다. 영화는 그들의 삶에서 아무런 해답도 꺼내지 않는다.
그건 그들이 살고 있는 실제 현실에서 건져낼 수 있는 것이라고 노동석 감독을 비롯한 이 영화의 스태프는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겸손한 만큼 소심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런 태도는 ‘마이 제너레이션’에 생생하고 정직한 기운을 불어넣어 관객으로 하여금 외면할 수 없는 설득력을 발휘한다.
배우를 포함해 6명의 스태프가 3,000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만든 ‘마이 제너레이션’은 소란스러운 영화산업의 틈새에서 자기 색깔을 갖고 영화를 찍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에게 고무적인 모범이 될 만하다. 예술가의 목소리는 주류 바깥에서 들려오기 시작한다고 이 영화가 암시하고 있다.
적은 돈으로 그저 친구들과 어울려 일기 쓰듯이 영화를 만들면서 그들 삶의 일부를 가식 없이 관찰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이 영화는 대기업의 독립영화 지원금과 영화진흥위원회의 후반작업 지원제도를 이용해 마침내 극장 개봉할 수 있는 프린트를 완성했다.
악수를 건넬 관객은 그렇게 많지 않겠지만, 이 영화의 작은 목소리에 공감할 관객들도 틀림 없이 존재할 것이다. 그렇게 이뤄지는 주류 바깥의 조용한 관객공동체야말로 또한 이 시대 ‘마이 제너레이션’ 영화문화의 소중한 얼굴이 된다.
보스니아 출신 다니스 다노비치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노 맨스 랜드’ 역시 ‘마이 제너레이션’과 마찬가지로 건방지게 현실에 대해 감 내놓아라, 배 내놓아라 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현실은 보스니아와 세르비아의 내전이다. 전쟁터의 복판에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을 꾸며낸 이 영화는 겉보기에 경쾌한 풍자 영화의 틀을 취하고 있지만 돌아서면 관객의 뇌리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 간명한 시각적 비유로 전쟁터에서 망가져가는 인간성의 면면을 관찰하고 있다.
자꾸 발버둥치면 칠 수록 헤어날 수 없는 웅덩이에 갇힌 것처럼 휴머니즘의 상실이 가속화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 영화는 ‘전쟁은 이런 것이다’는 전언에 외면할 수 없는 슬픔을 품는다. 기술적으로 매끄럽다고 볼 수 없는 이 영화의 마지막 결말은 어떤 윤기가 나는 전쟁영화보다 더 강력한 반전 메시지를 웅변하고 있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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