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어느 겨울날 아침, 한 증권사 영업팀장이 전화를 받다 쓰러졌다. 바닥 모르고 추락하는 주가에 항의하는 고객에게 10여분 동안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다 갑자기 사무실 바닥에 쓰러진 것이다. 병원에 옮겨지던 중 숨을 거둔 그의 사망 원인을 의사는 ‘스트레스에 따른 심근경색’이라고 진단했다. 서른 아홉의 젊은 나이에 숨진 박모 차장의 유족에게 회사측은 위로금과 장례비 등으로 3억6,000여만원을 지급했고, 이어 근로복지공단에 2억3,000여만원에 대한 산재보험 급여를 청구했다. 그러나 공단은 박 차장이 고객의 전화를 받다 사망한 것인지, 사적인 전화를 받아 사망한 것인지 알 수 없다며 지급을 거부했고, 회사는 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2년이 지난 이달 2일 서울행정법원은 "박 차장이 고객에게서 항의전화를 받다 쓰러진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며 "공단은 보험 급여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이 이런 판단을 내린 데는 끝없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던 당시 증시 상황이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종합지수는 2002년 4월 920대를 찍은 후 급전직하, 이듬해 3월엔 500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증권사 영업맨들은 매일같이 고객들의 항의전화에 시달렸고, 실적 부진을 질타하는 본사와도 싸워야 했다. 그 와중에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병에 걸리거나 박 차장처럼 쓰러진 영업직원이 부지기수였다.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04년 겨울, 종합지수는 900선 돌파를 향해 진군하고 있다. 내년에는 1,000포인트를 넘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대세를 이룬다. 2년 전과는 완전히 반대로 가고 있다. 그런데도 증권가의 겨울은 2년 전과 마찬가지로 스산하다. 국내 투자자들이 계속 증시에서 빠져나가면서 거대대금이 줄어 수수료 수입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에만 1,100여명의 직원이 증권사를 떠났고, 지점 수도 40여개나 줄었다. "증권맨이 결혼 선호도 1위일 때 들어왔는데, 불과 수년 새 결혼 기피 대상 1위로 바뀌었네요. 결혼도 하고 한국인 평균수명만큼 살려면 이 판을 떠나야 하는 걸까요?" 한 미혼 영업사원의 푸념이다.
최진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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