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11월 17일 개봉한 영화 ‘나비효과’ 논쟁이 한창이다. 영화의 완성도나 재미에 대한 익숙한 설전도 많지만, 극장판과 감독판을 놓고 벌이는 치열한 공방이 담긴 글들이 적지 않게 올라와 있다.상영시간 114분의 극장판에 단 6분이 더해진 감독판은 마지막 반전 부분이 판이하게 다르다. 극장판이 휴머니즘과 사랑이야기가 스며든 SF 스릴러라면, 감독판은 염세주의적 세계관이 가득찬 충격적 결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논쟁을 제공한 감독판은 우리나라에서는 물론, 영화가 제작된 미국에서도 개봉되지 않았다. 미국에서 감독판은 DVD타이틀로만 공개됐는데, 국내 네티즌들이 인터넷에서 떠도는 불법 복제물로 미리 접한 것이다.
감독판이라는 명찰을 달고 나오는 DVD타이틀은 대부분 선정적이고 폭력적이라는 이유로, 혹은 상영시간을 맞추기 위해 잘려나간 장면들이 새로 추가되는 경우가 많다. ‘블레이드 러너’나 ‘어비스’ ‘레옹’처럼 극장에서 이미 공개된 감독판을 다시 DVD타이틀로 출시하기도 한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처럼 1984년 개봉한 극장판이 139분이었던 것에 비해 229분의 상영시간이 그대로 담기기도 한다.
이들과 비교해보면 ‘나비효과’ 감독판은 매우 파격적이다. 필름으로 만들어진 감독판이 아예 없고, 늘어난 시간도 그리 길지 않다. 그러면서도 스릴러의 묘미인 반전이 극장판과 판연히 달라 전혀 새로운 영화로 다가서기 때문이다. 류더화(劉德華)가 경찰에 잠입한 스파이로 밝혀지는 결말을 부록으로 추가한 ‘무간도’나 ‘본아이덴티티’의 얼터너티브 엔딩과도 구분된다. ‘28일 후’가 부록에 영화와 상반된 결말을 스토리보드 형식으로 곁들인 것보다는 몇 수 위의 전략이 느껴진다.
무엇보다도 흥미로운 것은 극장판과 감독판이 경쟁하면서 동반 상승효과를 일으키는 현실이다. 많은 영화 팬들이 극장용과 안방용(불법이긴 하지만) 중 무엇을 볼까 고민하기도 하고, 같이 보고 비교하기도 한다. 불법 DVD 감독판이 관심을 유발한 덕분인지 ‘나비효과’는 지난 주말 15만명의 관객을 불러모아 박스오피스 1위로 올라서는 이변을 연출했다. 관객들이 극장판과 불법 DVD 감독판을 동시에 즐기는 현상은 DVD타이틀에 어떤 장면이 추가될지 바다 건너 소식에 귀를 쫑긋 세우던 시대가 벌써 저물고 있음도 보여준다. 디지털 시대 무단복제가 빚은 새 풍속도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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