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한 대학병원이 30일 신생아의 안락사에 대한 가이드라인 설정을 요구하면서 2000~2003년 치유 가능성이 없는 신생아 18명을 안락사 시켰다고 밝혀 파문이 일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같은 날 말기 환자가 생명연장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허용한 ‘죽을 권리(the right to die)’ 법안이 하원을 통과했다. 영국에서도 법원이 불치병에 걸린 환자가 자살 지원을 용인하는 국가로 이동할 권리를 인정하는 등 ‘안락사 선진지대’인 유럽에서 삶과 죽음을 선택하는 권리의 문제가 다시 쟁점화하고 있다.네덜란드는 2002년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허용했다. 하지만 환자의 요청이 있어야 하고 최소 2명 이상의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진단해야 하며 당국에 즉시 신고해야 하는 등의 엄격한 조건을 달고 있다. 그로니겐 대학병원은 이 같은 조건을 따르지 않았다. 이번 경우는 자신의 죽음을 요청할 자유의지나 능력이 없는 신생아에까지 안락사를 허용하느냐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다.
그로니겐 병원은 ▦병원의 의료진과 외부의 의사가 고통을 완화시킬 수 없다고 판단하고 ▦부모가 최선의 방법이라고 여길 때 신생아의 안락사를 허용해야 한다면서 그 사례로 ▦극심한 조산 ▦나머지 생애를 생명보조장치 없이 살아갈 수 없을 때 등을 예시했다. 병원측은 이 같은 기준에 따라 신생아의 생명을 끊어왔다고 고백했다.
어린이에 대한 안락사는 유례가 없는 것이어서 어느 때보다 치열한 윤리논쟁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그러나 네덜란드에서는 안락사 허용 이후 매년 1,000명 이상이 환자 본인의 동의 없이 안락사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에도 의사나 병원에 대한 기소는 이뤄지지 않을 전망이다.
내년 상원 심의를 남겨두고 있는 프랑스의 ‘죽을 권리’ 법안은 의사의 판단에 의해 결정되는 안락사와 달리 환자 스스로가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처음으로 보장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조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필립 두스트 블라지 보건장관이 "죽음은 이제 복종이 아닌 선택이 됐다"고 환영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프랑스 정부는 남을 죽게 할 권리를 합법화하지 않겠다고 강조하면서도 ‘죽을 권리’가 안락사를 대신해 환자의 품위 있는 죽음을 가능케 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영국 고등법원은 불치병에 시달리는 여성환자가 남편과 함께 자살지원을 용인하는 스위스로 이동하는 권리를 박탈당해서는 안 된다는 이례적 판결을 내놓았다. 영국정부는 자살을 지원할 경우 최고 14년의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한 1961년 ‘자살법’에 따라 남편을 처벌할 수 있다. 그러나 ‘Z’라고 불려온 이 환자는 그 동안 자살법에 맞서 죽을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판결은 안락사는 국가가 개입할 사안이 아니라는 취지여서 영국에서도 안락사를 새롭게 해석하는 전기가 될 전망이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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