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 맥그리거의 얼굴은 하얀 도화지와 같다. 그래서 마약에 찌든 뒷골목 청춘(‘트래인스포팅’)과 슬픈 사랑에 빠진 열정적 소설가(‘물랑루즈’), 제다이 기사를 양성하는 오비완(‘스타워즈 에피소드’) 등 각기 다른 역할을 그려넣어도 그의 모습은 거부감 없이 스크린에 투영된다. 어떤 역이든 온몸으로 흡수시켜온 그는 ‘영 아담’(Young Adam)에서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선상에 있는 인간의 본성을 여전히 강렬한 연기로 보여준다.이완 맥그리거가 연기한 조는 무책임하고 도덕 관념은 희박하지만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춘 복합적 인물. 사고로 죽은 여자친구의 몸을 쓰다듬으며 연민을 보이다가도 곧바로 유부녀의 몸을 넘보는 무뢰한이다. 눈이 마주친 대부분의 여자와 관계를 맺고 주변 사람들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지만 악인으로만 볼 수 없는 역할이다.
글래스고와 에든버러를 떠돌던 조는 운하를 오가며 화물을 실어 나르는 바지선에서 일자리를 얻는다. 평화로운 수면위로 속옷만 걸친 한 여인의 시체가 떠오른 날, 그는 바지선의 안주인 엘라(틸다 스윈튼)를 유혹한다. 세인들의 관심 속에 이 여인의 익사 사건 재판이 진행되는 가운데 조는 여체를 탐닉하며 옛 동거녀 캐시와의 과거를 떠올린다.
영화는 전통적인 플래시 백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과거를 불러낸다. 느닷없이 끼어드는 회상 장면은 낯설게 느껴지면서도 긴장의 끈을 팽팽히 죄어온다. 바지선의 삐걱거리는 소리와 재즈곡 ‘하이티안 파이트 송’(Haitian Fight Song)의 도발적인 음도 귀를 자극한다.
자신의 행동에 양심의 가책을 느낄수록 도덕의 틀을 파괴해가는 ‘젊은 아담’ 조의 모습은 절대 평면적으로 다가설 수 없는 인간의 실체를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깜짝 반전이나 명확한 기승전결의 구도를 갖추고 있지 않은데도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도록 하는 지적 스릴러라 할 수 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이완 맥그리거의 베드신이 한 커트도 잘리지 않고 국내 심의를 통과해 화제가 되었다. 미국에서는 전라 연기 장면이 처음에 삭제 되었으나 이완 맥그리거의 강한 반대로 다시 복원해 상영하였다.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틸다 스윈튼과 불륜을 저지른 아내를 떠나는 레스 역의 피터 뮬란의 생동감 넘치는 연기도 볼거리다. ‘비트 세대’(Beat Generation)의 괴짜 작가 알렉산더 트로키의 동명소설을 영상으로 옮겼다. 데이비드 맥킨지 감독. 3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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