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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으로 세상읽기/‘원조 팔방미인’ 탈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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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으로 세상읽기/‘원조 팔방미인’ 탈레스

입력
2004.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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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두 개 이상의 직업을 갖는 투잡스(two jobs)가 성행한다는데, 아마 투잡스의 선구자는 고대 그리스의 학자들일 것이다. 그 당시 한 학자가 여러 분야에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학문적으로 뛰어나기도 했겠지만, 현재와 같이 연구 분야가 세분화 전문화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역사상 여러 분야를 두루 섭렵한 대표적인 학자로 고대 그리스의 탈레스를 꼽을 수 있다.그는 무엇이 본업이고 무엇이 부업인지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수학 철학 천문학 등에 큰 업적을 남겼으니 투잡스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탈레스는 고대 그리스의 7대 현인 중에 첫 번째로 꼽히는 철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이등변삼각형의 두 밑각이 같다’라는 것을 비롯해 기하학의 기본적인 성질들을 증명한 수학자이기도 하다.

두 선분이 교차할 때 생기는 마주보는 각을 맞꼭지각이라고 하는데, 탈레스는 두 맞꼭지각이 같다는 것을 연역적으로 증명했다. 그림에서 맞꼭지각인 각 a와 각 b가 같은지 알아보려면 실제로 각을 재어 크기가 같은지 확인하면 될 것이다. 두 선분과 그에 따라 맞꼭지각이 주어지면, 각 경우마다 각을 측정해 봄으로써 크기가 같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이 각각의 사례를 확인해보는 귀납적 방식으로는 모든 경우에 맞꼭지각의 크기가 항상 같다는 것을 보장할 수 없다. 탈레스는 각 a와 각 c를 더하면 180도이고, 각 b와 각 c를 더해도 180도이기 때문에 각 a와 각 b가 같다는 연역적인 증명을 했다. 이는 구체적인 몇몇 사례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선분과 각이 주어져도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논리에 의한 강력한 증명이다.

탈레스는 상인인 아버지를 따라 이집트를 방문했다가 웅장한 피라미드에 압도됐다. 그는 피라미드의 높이를 짧은 막대기 하나로 계산함으로써 이집트 왕을 놀라게 했다. 탈레스는 막대기를 땅 위에 똑바로 세우고, 피라미드 그림자의 끝과 막대기의 그림자 끝이 일치하도록 맞추었다. 이 때 ‘피라미드의 높이’와 ‘막대의 길이’의 비는 ‘피라미드의 그림자’와 ‘막대의 그림자’의 길이의 비와 같다. 막대의 길이와 그림자의 길이는 잴 수 있으므로 이 비례 관계를 이용해 피라미드의 높이를 구할 수 있다. 탈레스는 철학자로서 모든 물질은 그 자체로 생명을 갖추고 있어 생동한다는 물활론(物活論)을 주장했다. 변화하는 만물을 관통하는 본질적인 것을 추구한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고 보았다. 물은 생명을 위해 필수불가결하며, 인체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고, 고체 액체 기체라는 3가지 상태로 변화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물이 만물의 근원이라는 주장은 그럴듯하게 들린다.

탈레스는 게으른 당나귀에 관한 이솝 우화에도 등장한다. 이 우화에 따르면 당나귀가 소금을 싣고 강을 건너다 그만 실수로 강물에 빠진다. 등에 싣고 있던 소금이 녹아 짐이 가벼워지자 재미를 붙인 당나귀는 강을 건널 때면 상습적으로 넘어지곤 했다. 이를 눈치 챈 주인은 소금 대신 솜을 당나귀의 등에 실었고, 일부러 넘어져도 다른 때와 달리 짐이 무거워진 것을 안 당나귀는 그 버릇을 고치게 된다. 여기서 당나귀의 주인이 바로 탈레스이다.

탈레스는 천문학에도 관심이 많아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과 1년은 365와 1/4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이름을 드높인 계기는 기원전 585년에 일어난 일식이다. 그는 천문학 지식을 동원해 일식을 정확히 예측했으며, 더욱이 메디아와 리디아의 싸움이 끝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한참 싸움을 하던 메디아와 리디아 진영은 일식 때문에 태양이 갑자기 빛을 잃자, 이대로 전쟁을 계속하면 신의 노여움을 사게 될 것이라고 여겨 전쟁을 멈추었다. 결국 탈레스의 예언은 적중했다. 이런 예언은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됐다는 면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이전에는 계절의 변화나 기후 현상을 신의 조화로 여겼으나, 이를 객관적 사실로 파악해 과학적으로 규명하게 된 것은 중요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의미한다.

탈레스에 대한 또 다른 야사(野史)에 따르면 그가 어느 날 하늘의 별을 관측하며 걷다가 그만 웅덩이에 빠졌다. 이를 본 노파가 "바로 눈 앞의 일도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 수 있는가?" 라고 빈정댔다고 한다. 바로 앞에 놓인 일들에 얽매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으로선 설사 발 앞에 놓인 웅덩이에 빠지는 한이 있더라도 저 멀리 원대한 것을 바라보며 몰입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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