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표 교수가 말하는 배추·유채·김치전국 곳곳에서 김장을 담그느라 분주하다. 김장하는 어머니 옆에 쪼그리고 앉아 집어먹던 싱싱한 겉절이는 생각만으로도 입에 침이 돌게 한다. 일년 내내 두고 먹기 때문에 무심히 지나쳤던 김치, 그리고 배추. 식탁에 날마다 올라오는 배추에 대한 과학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향긋한 배추 향과 함께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배추 박사’로 유명한 충남대 원예학과 임용표 교수에게서 배추와 김치의 과거, 현재, 미래를 들어봤다.
◇우리나라가 배추연구 주도권
우리가 ‘배추’라고 간단히 부르는 채소의 학명은 ‘브라시카 라파(Brassica rapa)’입니다. 이외에도 배추과에 속하는 식물은 양배추 겨자 유채 갓 등 3,350여종에 이릅니다. 이 식물들은 대부분 채소로 이용될 뿐더러, 비타민 식용유 등의 주원료로도 사용됩니다. 때문에 영국 프랑스 미국 캐나다 등 세계 여러 나라는 배추과 작물의 유전자원 보존, 육종 및 유전자 연구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한 예로 충남대에서 10월말 열린 ‘브라시카 2004’ 심포지엄에는 200여명의 과학자가 참석해 190편의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과학자 중 130여명은 프랑스 스웨덴 독일 등 20여 개 나라에서 온 외국인이었으니 배추과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김치 없이 못 사는’ 국민들 때문인지 배추 연구에 있어 한국은 단연 선진국입니다. ‘씨 없는 수박’과 ‘종의 합성 이론’으로 이름난 우장춘 박사의 배추에 대한 많은 연구 성과도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특히 배추와 양배추가 합쳐지면 유채가 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은 외국에서도 배추 연구에 관심을 갖도록 한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배추과 식물 유채, 미래 에너지원 가능성
일반인들은 유채에서 ‘한라산에 노랗게 핀 아름다운 꽃’만 생각하기 쉽지만, 유채는 미래의 먹거리와 에너지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은 식물입니다. 시장 규모도 연간 약 150억 달러(약 15조6,000억원), 재배 면적은 2,370만 헥타르에 달하고 생산량도 3,600만 톤에 달합니다.
도대체 유채에 무슨 가치가 있길래 이토록 많은 양이 거래될까요. 현재 가장 큰 쓰임새는 유채 씨앗에서 짜낸 ‘채종유’라는 식용 기름입니다. 몸에 나쁜 포화지방산 함유량이 가장 낮아 ‘웰빙 열풍’을 타고 인기가 높아지고 있지요.
미래의 가능성은 더욱 큽니다. 과학자들은 현재 유채 기름을 이용한 ‘바이오 디젤’을 만들기 위해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화석연료가 고갈되는 100년 후쯤이면 유채가 미래 에너지원으로서 무한한 가능성을 가졌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유채의 염색체는 38개. 우장춘 박사가 밝혀낸 바에 따르면 유채는 배추의 유전자 20개에 양배추 유전자 18개를 고스란히 합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배추 유전자 연구가 활력을 띄면 엄청난 시장가치를 지닌 유채에 대해 수많은 과학적 사실이 밝혀질 것입니다.
◇한국 배추, 게놈 연구 표준모델 선정
이같이 세계적 관심을 끌고 있는 배추 연구에 한가지 반가운 소식이 들립니다. 최근 열린 ‘국제 배추과 게놈 컨소시엄’ 회의에서 한국 배추인 ‘지부 계통 배추’가 표준모델로 선택됐다는 사실입니다. 벼의 경우 일본의 ‘니폰바레(日本淸)’가 표준 품종으로 선정돼 염기서열 분석이 이뤄지는 등 우리나라가 중심이 된 게놈 연구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매우 고무적인 성과입니다.
충남대 배추게놈소재은행을 비롯한 과학자들의 노력이 바탕이 됐음은 물론입니다. 특히 그 동안 우리 연구실과 농촌진흥청 농업생명공학연구원에서 진행된 배추 염기서열 분석결과를 세계에 공개, 배추 양배추 유채 등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했던 ‘열린 마음’이 결실을 거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영국 호주 등이 공동으로 배추의 DNA 염기서열을 밝히는데 힘쓰고 있는 만큼, 2007년께 배추의 염기서열이 모두 밝혀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정리=김신영 기자 ddalgi@hk.co.kr
■김치 기원 고구려에 닿아 김장 역사는 최소 800년
‘김치’라는 말은 ‘채소를 소금물에 담근다’라는 뜻의 ‘침채(沈菜)’에서 비롯됐다. ‘침채’가 ‘팀채’, ‘딤채’, ‘짐치’가 됐다가 ‘김치’로 자리잡았다. 우리나라의 김치류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중국 ‘삼국지 위지동이전’ 고구려편에 "고구려인은 술빚기, 장 담그기, 젓갈 등의 발효음식을 매우 잘한다"라고 나와 있다. 또 ‘삼국사기’는 신라 신문왕이 683년 왕비를 맞이하면서 내린 폐백 품목 가운데 간장 된장 젓갈 등이 들어있다고 해, 김치의 역사가 매우 길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은 ‘장에 절인 순무 장아찌는 여름철에 먹기 좋고, 소금에 절인 순무는 겨우내 찬으로 쓰인다’고 기록한다. 고려 중기의 문인 이규보가 사망한 것이 1241년이니, 김장의 역사도 800년이 다 되가는 응甄?
배추는 지중해 연안에서 처음 재배됐으며, 약 2,000년 전 중국에 전파됐다. 7세기쯤 중국 북부지방에서 재배되던 순무와 남부지방에서 자라던 ‘숭’이라는 채소가 합쳐져 지금과 비슷한 모양을 띠게 됐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에는 13세기경 쓰여진 ‘향약구급방’에 배추와 관련된 단어인 ‘숭’이 처음 등장한다. 당시에는 채소가 아닌 약초로 이용됐다. 속이 꽉 찬 배추가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1,800년대 말로, 그 때부터 지금의 모양을 띈 ‘통 배추김치’가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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