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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진의 방송보기] 강남 춤과 강북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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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진의 방송보기] 강남 춤과 강북 춤

입력
2004.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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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문화현상에 대해 강의를 하다 보면 여러가지 다른 종류의 삶의 방식을 언급하게 된다. 게임으로 하루를 보내는 청소년들, 오토바이에서 즐거움을 찾는 폭주족들, 명품을 두르고 고급 와인을 즐기는 소위 보보족들. 이들은 그 안에서 나름대로의 프리즘으로 세상을 보고 읽고 생활한다. 물론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나 생각하는 방식들을 끔찍이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문화에 높고 낮음이 있을 수는 없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교향곡이 홍대 앞 인디밴드의 하드록 연주보다 ‘우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입장료 차이가 곧 수준차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천박한 생각이다.TV의 오락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강남의 춤과 강북의 춤을 희화화 하여 비교했다고 해서 작은 논란이 되고 있다. 실제로 춤추는 모습이 다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도시생활을 강남과 강북의 이분법으로 해석하려 하는 현상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되도록이면 사실을 단순화시켜 이해하고자 하는 인간의 심리를 탓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남의 춤이 우아하고 강북의 춤이 우스꽝스럽다고, 그래서 이는 ‘차이’의 문제도, ‘취향’의 문제도 아니고 ‘우열’의 문제라고 암시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오락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고자 애쓰다 보면 종종 예기치 않게 상처를 입는 사람들이 나오게 마련이다. 이들이 하나하나 꼬투리를 잡아 항의를 하다 보면 프로그램 만드는 일이 얼마나 고달플지 쉽게 짐작이 간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힘없는 사람들을 웃음거리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자들, 이를테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희화화 하는 것은 용인될 수 있다. 만약 청와대나 국회가 항의한다면 그들이 오히려 시대착오적이다. 하지만 항의할 사람이나 데모할 협회가 없다고 노숙자나 촌로, ‘아줌마’들을 우스개로 만드는 것은 ‘힘 있는’ 방송인들의 횡포다.

같은 이유로, 오락 프로그램에서 거의 빠지지 않는 웃음의 원천이 ‘못생겼음’과 ‘뚱뚱함’이라는 점 역시 안타까운 부분이다. ‘깜찍이’와 ‘끔찍이’를 나란히 세워놓는 코미디 프로그램이나, 별로 뚱뚱하지도 않은 출연자를 돼지에 비유하며 보라색 도장이 찍혔네, 돼지들 말을 알아듣네 하며 낄낄거리는 프로그램은 한 예에 불과하다. 왜 시청자들의 가학적 본능을 건드려야 웃음이 나온다고 생각하는 건지.

강북 사람들이나 못생긴 여성, 그리고 뚱뚱한 사람들을 ‘약자’라 부르는 것이 또 다른 차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름’에 대한 배려는 있어야 한다. 큰 배려가 아니다. 이들을 웃음거리로 삼는 정서적 둔감함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 배려다. 현실에서 가해지는 이들에 대한 폭력만으로도 충분히 씁쓸하기 때문이다. 다수와는 다른, 혹은 평균치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의 존재와 삶, 생각들을 인정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시민적 소양이다. 방송인에게 이 소양을 요구하는 것이 결코 지나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연세대 영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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