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 듯 말 듯한 상처로부터 좁쌀 같은 핏방울이 송송 솟는다. 아니 누를 수 없다. 이만하면 그 구멍이 아물었으려니 하고 손을 떼면 또 피가 비치어 나온다. 헝겊 오라기로 처매는 수 밖에 없다. 상처를 누른 채 바느질고리에 눈을 주었다. 쓸만한 오라기는 실패 밑에 있다. 두 새끼손가락 사이에 집어 올리려고 한동안 애를 썼다. 오락지는 마치 풀로 붙여둔 것 같이 고리 밑에 착 달라붙어 세상 잡혀지지 않는다.현진건(玄鎭健)의 단편 ‘술 권하는 사회’의 도입 부분이다. 이취자(李醉者)의 아내가 남편을 기다리며 바느질하다 손가락을 찔리는 장면이다. 술이 덜 깬 이취자가 다음날 아침 집을 나서자 아내가 뒤에서 절망하듯 중얼거린다.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열흘이 넘도록 대학수학능력시험 휴대폰 부정 사건이 난리를 치고 있다. 편집국에서 신문 지면을 도배질 하다 보니 ‘술 권하는 사회’가 떠올랐다. 찾아서 들여다보니 수능 사태를 겪는 지금의 모습을 정확히 예언하고 있다. 참 희한하다. 소설은 1920년대 일제시대 우리 사회를 은유적으로 묘사한 것이었을 텐데.
광주에서 몇몇 고교생의 조직적 부정행위가 발견되면서 시작된 것이 한없이 확산되고 있다. 간단한 상처쯤으로 여겼는데 꼼지락거릴수록 더욱 커진다. 치유책을 찾으려 들수록 출혈은 심해진다.
대책이랍시고 내 놓는 것들이 가관이다. 시험장마다 전파차단기를 설치한다고 한다. 전파차단기 문제는 부작용이 지적되어 이미 위법으로 규정돼 있다. 부정행위를 들킨 학생은 이후 3년간 시험자격을 박탈하겠다고 한다. 수년 전 유사한 사태로 ‘2년간 자격 박탈’이 논의됐으나 가혹한 처사라는 이유로 그 시험만 무효처리 하게 돼 있다. 학생을 3년간 ‘생매장’하겠다는 협박이 어떻게 교육자의 입에서 나오는가. 또 무슨 테러위협이라도 있는가. 고사장에 금속탐지기를 설치하겠다고 덤빈다. 공항출입국의 모습이 일부 대학 시험장에서 재연되고 있다. 고려 말 과거시험 부정행위가 빈발하자 서둘러 꺼낸 대책들과 다르지 않다. 700년 전 부정행위자는 응시자격을 영원히 박탈 당하고, 장(杖) 100대와 도형(徒形) 3년을 받았다.
예나 지금이나 ‘어른들이 자신들만 편하자고’ 내놓는 방편들이다. 학생의 인권이나 체면, 장래는 아예 염두에 없다. 교육을 책임진 그들이 침묵하는 사이 경찰은 청소년들을 무시로 잡아들이고 구속하고 있다. 그들이 전리품처럼 ‘죄질과 범행 수법’을 발표하는 모양을 보면 옛날 무장공비 출현이나 간첩선 격침, 최근 유영철 연쇄살인 등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이제는 접어야 할 시기다.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추적한다면 어디까지 하자는 것인가. ‘12345’는 범죄이고 ‘가나다라마’나 ‘ABCDE’는 무죄인가. ‘탐구’나 ‘어학’은 압수수색을 하고 ‘2교(시)’나 ‘3교(시)’는 면죄부 대상인가. 적발된 수험생이 1,000명에 이른다면 나머지 60만 2,050명에게 재시험을 강요할 것인가. 적발되지 않은 부정행위자는 어찌할 것이며, 정당하게 시험을 치르고도 성적이 올랐다는 이유로 ‘휴대폰에 능한 아이’라는 눈총을 받는다면 어찌할 것인가.
어른들의 몫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부정행위를 스스로 거부하게끔 학생들에게 인성교육을 잘 시키자는 ‘공자님 말씀’은 촌스럽다. 오히려 감독교사에게 ‘인성교육’을 제대로 시키고, 장기적으로 입시제도에 대한 침착한 재론을 시작해야 한다. 자원봉사자(자신의 아이들은 부정행위를 하지 않을 것으로 철석같이 믿는 학부모)를 대거 동원하자거나, 본고사 시절로 돌아가자는 얘기는 곤란하다.
80여년 전 43세로 요절한 천재 소설가가 고발한 것은 ‘술 마시는 사람’이 아니라 ‘술 권하는 사회’였다.bjjung@hk.co.kr
정병진
부국장 겸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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