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운명은 문화의 힘에 의존된다.’ 이 원대하고 야심찬 문장으로 창간사를 열며 1955년 1월 선을 보인 순문예 월간지 ‘현대문학’이 반세기를 꼬박 이어 이 달 통권 600호(사진)를 냈다. 이 기념특대호의 발간사 역시 ‘한 민족의 정신적인 창조의 토대는 그 고유한 언어와 문자에 있습니다’로 시작한다. 1호와 600호의 까마득한 간극을 채워 온 문화, 그 언어와 문자의 힘은 곧 한국 현대문학의 힘이다.‘현대문학’은 752페이지의 묵직한 기념호를 세로쓰기로 편집했다. 거기에 손창섭 김동리 장용학 황순원의 소설, 서정주 유치환 김춘수 김광섭 박목월 김종길 정진규 등 그 이름만으로도 우리 문학의 이정표가 될 만한 작가의 작품들을 이성복 허수경씨 등이 쓴 근래의 고정 연재물과 함께 재수록 했다.
그 중에 김현(평론가)-황동규(시인)씨가 73년 8월호 ‘상호데쌍’코너에서 나눴던, 서로에 대한 인물평이 눈길을 끈다. 황동규 씨의 글 제목은 ‘싫은 놈이다’다. ‘나는 도대체 김현이가 싫다. 그의 돗수 높은 안경이 싫고, 최근에 특히 부른 그의 술배가 싫다…요컨대 그는 음험하다. 그의 글을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는 교묘하게 감춰진 문맥으로 남을 공격하곤 한다.’로 이어진다. 그의 아슬아슬한 ‘험담’은 끄트머리에 가서야 간신히 수습된다. ‘다만 그가 없으면 생이 얼마나 삭막할 것이냐를 고백함으로써 이 글을 읽고 그가 혹시 품게 될 지도 모르는 앙심을 달래기로 하자.’
김현씨의 글은 ‘이렇게 쓰면 황순원 선생께서 화를 내실 지 모르지만…’으로 운을 떼며, 그가 황순원씨와 (말석에서나마) 대작(對酌)한 경험담으로 황씨의 기를 죽인다(황순원씨는 그의 부친). ‘여하튼 나는 그가 자주 콤플렉스를 느껴주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지나치게 파렴치한 데가 있어서 그것을 무시하고 달겨든다. 그것은 괘씸한 일이다.’ ‘서정주와 김수영이 있는 한 그는 자기가 제일 시를 잘 쓴다고는 소리지르지 않겠지만, 그들만큼은 쓴다고 속으로 자부할 것이다. 엉큼한 놈이다.’
박경리씨는 에세이 ‘나의 문학수업’(60년1월호)에서 유년의 불행과 학창시절 결혼으로 이어가다가 전쟁으로 남편을 사별한 뒤, 고향 피란지에서 만난 ‘K’와의 ‘불행한 연애’ 이야기를 언뜻 내보이고 있다. 평론가 유종호씨의 패기만만한 등단소감이며, 미당 등 당대의 문인들이 쓴 후배 문인의 추천사, 이제는 원로 반열에 든 이제하씨 등의 추천완료 소감을 읽는 재미도 만만찮다.
그 50년동안 현대문학에 작품이 실린 작가가 6,650여명, 작품 수는 3만4,000여 편이다. 이들을 모두 300페이지 분량의 색인으로 정리하며 따졌더니 현대문학을 통해 배출된 문인만 시인 327명 등 570명이었다. ‘현대문학’이 50년 전 창간사의 다짐처럼 ‘무정견한 백만 인의 박수보다 문학에 대한 깊은 애정과 옳은 식별력을 가진 단 한 사람의 지지를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유구히 이어가기를 문단은 한마음으로 바라고 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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