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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해탄 넘어선 젊음의 ‘인연’ 34년만에 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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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해탄 넘어선 젊음의 ‘인연’ 34년만에 상봉

입력
2004.1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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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몇 년 만입니까? 34년? 함께 늙어가니 든든하네요. 고마워요 김상!" "30년 뒤 만나자는 약속 때문에 일본에 7번이나 갔어도 일부러 연락은 안 했습니다. 재미있지요?"30일 오전 9시 서울 신라호텔 커피숍. 한국과 일본의 중년 남성들이 젊은이들처럼 얼싸안았다. 젊은 시절 우연한 만남이 30년 넘게 편지왕래로 계속됐고, 헤어질 때의 다짐 그대로 재회의 기쁨을 만끽했다. 기은신용정보 김영준(金榮俊·57) 사장과 일본 정유회사 이데미교산(出光興産) 품질관리기사 스기하라 히로미(原裕三·55)씨 부부, 조봉인(65) 동광전력 회장 등 7명.

김영준 사장과 스기하라씨의 인연은 1970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기하라씨는 한일수교 5년째인 당시 서울의 모습을 직접 보고 싶어 단돈 5만 엔(당시 5만 원)을 들고 비행기에 올랐다. 이 때 한국전력 제주지사에서 근무하던 조봉인씨는 서울로 출장 와 여관에 묵고 있었다. 옆방에 일본 청년(당시 21세)이 있는데 서울 구경 좀 시켜 주라는 여관 주인의 권유에 조씨는 후배 김 사장(당시 23세·기업은행 근무)과 최인규(58·민경건설 전무)씨에게 3일간 안내를 맡겼다. 경복궁, 덕수궁, 남산타워, 인사동, 창경궁, 명동, 소주, 육개장, 비빔밥…. 김 사장은 "일본에 대한 감정이 안 좋아 내키지는 않았지만 혼자 왔다는 게 안돼 보여서 일을 맡았지요"라고 회고했다.

말은 잘 안 통했지만 스기하라씨의 궁금증은 차츰 해소됐다. "당시 일본에서는 ‘한국은 가난한 고아의 나라’라는 둥 부정적 이미지가 많았습니다. 나중에 한국인이 얼마나 부지런하고 친절한지 알리고 다녀도 믿질 않더군요."아세아극장에서 반공영화를 보고 분단 한국의 현실을 소스라치게 느끼게 됐다. 박노식이 무정 장군으로 나온 영화였다고 한다. 당시 둘은 자기 나라를 대표하는 기분으로 "열심히 살고 상대 국가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으며 철저한 지한파, 지일파가 되자"고 다짐했다.

스기하라씨는 이후 ‘전후 세대의 한국 방문기’를 마이니치신문에 연재하는가 하면 TV에 출연해 한국인에 대한 고정관념 타파에 나섰다. 단행본으로 출간된 방문기 인세를 한국 고아원에 기증해 71년 한국 신문에 소개되기도 했다.

이날 김 사장은 "약속대로 일본에 관한 공부를 평생 게을리하지 않았다"며 그 동안 했던 일과 철저히 독파한 일본 서적 26권의 제목을 적은 목록을 내밀었다. 스기하라씨도 3권의 두툼한 앨범을 꺼내 34년 전 추억의 서울 풍경을 담은 흑백 사진과 그 동안 김 사장과 주고받은 수많은 편지, 한국 관련 기사 스크랩을 보여줬다. 당시의 열차표나 희귀 인쇄물에서 일본인 특유의 꼼꼼함이 묻어난다.

스기하라씨는 "양국 사람들 모두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긴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인의 따뜻한 품성은 전혀 바뀌지 않았네요. 일본군대위안부 문제 등 많은 벽이 가로막고 있지만 우리의 우정은 대물림될 겁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씨는 "내년이 한일수교 40주년, 광복 60주년입니다. 지금도 양국간 민감한 사안이 있지만 따뜻한 가슴만큼은 서로에게 전해질 것입니다"라고 화답했다.

스기하라씨는 함께 온 아내(50), 친구 부부와 함께 NHK에서 본 ‘겨울연가’의 현장 남이섬을 찾아 욘사마의 자상함을 음미하고 1일 저녁 일본으로 돌아간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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