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용준 때문에 일본 열도에 난리가 났다. 그 소식에 ‘겨울연가’의 연출자 윤석호(47) PD는 한편으로 뿌듯하고, 한편으론 서운한 듯 했다. "배용준 혼자서 ‘겨울연가’를 만든 건 아니죠. 젊은 스타들 일정에 맞춰 종일 기다려준 중견 배우들, 한밤중에 지원 나온 카메라 맨, 밤을 새운 작가…. ‘겨울연가’는 모두 함께 만든 문화산물인데, 배용준만 도드라지니 반감도 듭니다."일본에서는 그도 ‘준(準)스타’다. 인기 드라마작가 구라모토 소오(倉本聰)와 같이 작품을 만들기로 했고, 교도통신은 그의 평전 ‘윤석호 감독의 연출세계’를 냈다. 30일에는 85년 역사의 일본 영화잡지 키네마준보가 주는 특별상인 ‘한·일 우호 공로상’도 받았다. "일본에서 드라마 PD의 평전이 나온 건 처음이랍니다. 영화상 받은 것도 흔치 않은 일이고. 신문과 잡지에 인터뷰도 수없이 실려 서울 롯데백화점만 가도 일본인 아줌마들이 알아보고 사진 찍자고 해요."
‘겨울연가’가 국내보다 일본에서 더 인기끈 것을 그는 이렇게 해석했다. "어느 일본인이 ‘겨울연가’를 두고 ‘일본 중년여성들에게 소녀를 다시 찾아줬다’고 썼는데, 은유적이지만 포인트를 제대로 잡은 것 같아요. 변화무쌍하고 경쟁이 치열한 한국 사회보다는 안정적인 일본이 무언가를 돌아보고, 그리움을 느끼는데 더 맞았겠죠."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도 인기를 누리는 것에는 3비(非)론을 더한다. "‘겨울연가’는 비폭력, 비섹스, 비정치적이죠. 첫사랑, 그리움, 순수같은 보편적 정서를 영상과 미술, 음악이란 공통어로 전달한 것이 통했나고나 할까요."
CF 조감독으로 출발한 그는 "아이가 나와 뽀드득 소리 한 번 낸 치약이 수십 년 간 독점적 지위를 누리던 경쟁 브랜드를 누르는 걸 보며 영상의 힘을 체득했다"고 했다. ‘가을동화’ ‘겨울연가’ ‘여름향기’ 등 사계 시리즈로 대표되는 그의 작품 세계는 온통 영상에 대한 실험으로 가득하다. 영상이 그의 작품을 이루는 뼈와 살이라면, ‘영원 불멸한 사랑’은 그 정수(精髓)다. "잠깐만 한눈 팔아도 낙오되니까, 사람들이 점점 독해져요. 그런 이들을 잠시나마 아름다운 사랑의 환상에 젖게 해주는 게 제 역할이죠. 드라마를 ‘사랑 타령’이라고 폄하하는 건 싫어요."
그가 2006년 내놓을 작품은 4계 시리즈의 완결판인 ‘봄의 왈츠’. "정통 멜로에는 남녀를 운명적으로 갈라놓는 장치가 있어야 해요. 출생의 비밀, 불치병, 기억상실증 같은. 하지만 또 쓰면 ‘자기복제’니까 피해야 하고, 새로운 걸 보여주자니 머리가 복잡하죠. ‘여름향기’는 그래서 심장이식이란 장치를 썼는데 너무 아이디어에 끌려가다 보니 이야기가 좀 비었죠. 그냥 봄은 사랑을 시작하는 계절, 설렘, 떨림이라고만 정의했을 뿐 아직 ‘화두’를 찾지 못했어요." 그의 고민은 ‘겨울연가’가 한류 드라마의 원전이 되면서 더 깊어졌다. "여성적이고 깨끗하고 판타지 같은 제 작품은 한국 드라마의 지류에 불과한데 ‘겨울연가’가 대표로 간택돼 어깨가 무겁습니다."
윤 PD는 쏟아지고 있는 한류 드라마에 대해 "벌써 일본에서 ‘한국드라마는 여주인공이 불치병 걸려 죽는다, 다 똑같다’는 소리가 나온다. 공식을 알아버렸다"면서 생생한 영상은 강점이지만 이야기가 좀더 다양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극적인 선악구도로 극악하게 만든 ‘센 드라마’는 외국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 수야 있겠지만 한국인들의 가족애, 타인에 대한 배려, 사랑에 대한 추구 같은 걸 전해줄 수 없을 거에요. 그렇다면 ‘한류’가 다 무슨 소용이겠어요?"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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