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퇴계학의 현대적 계승을 표방한 유림 단체인 박약회(博約會) 회장을 맡고 있다. 10월 25일에는 회원 560명과 함께 공자의 고향인 중국 산둥(山東)성 취푸(曲阜)에 가서 제사를 올렸다.중국 정부는 공자를 봉건주의 노예제도의 옹호자라는 이유로 깎아 내렸다. 이런 이유로 공자의 묘는 단순한 문화유물로 전락했다. 우리는 바로 그 현장에서 중국인들이 잃어버린 전통 문화의 본보기를 보여주었다. 우리는 성균관에서 매년 봄 가을 공자를 위한 향사(享祀)를 지내는데, 공자 탄신 2,555주년을 맞아 성균관에서 한 것과 똑 같은 제물과 예복과 절차로 예를 올렸다.
박약회는 전국에 4,000명 정도의 회원이 있다. 원래 이 모임은 김호길 전 포항공대 총장이 중심이 돼 1987년 7월 만들어졌다. 그런데 김 박사가 94년 4월 갑작스레 세상을 등져 내가 회장직을 승계했다. 박약회는 퇴계 이황 선생의 학문과 행실을 본받아 도덕 국가를 재건하자는 취지로 설립됐다. 지금은 퇴계 뿐 아니라 모든 선현들의 학행을 연구, 계승하는 것으로 목표를 넓혔다.
우리나라에는 성균관과 유도회, 담수회 등 여러 유림 단체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여느 단체와 다른 새로운 일을 찾아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박약회가 주요 사업으로 가정 교육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람들은 지금 세상이 도덕적으로 무너져 가고 있는 걸 개탄하면서 그 책임을 정부나 학교, 방송 등으로 돌리고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젊은 세대나 어린 아이들이 문제가 있는 건 바로 우리 책임이다. 남을 탓하기에 앞서 우리 자신부터 자녀를 올바르게 가르쳐야 한다.
요즘 할아버지들은 대개 손자와 떨어져 산다. 할아버지는 시골에, 손자는 서울에 사는 경우가 많다. 또 다 같이 서울 하늘 아래 있다 해도 조손(祖孫)이 따로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는 어릴 적 할아버지 옆에서 자면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는 내 인격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이 소중한 기회를 잃고 있다. 모처럼 할아버지와 손자가 만나도 썰렁하다. 할아버지가 들려줄 수 있는 가르침의 밑천이 5분이면 바닥나기 때문이다. "공부 열심히 하느냐, 어떤 대학에 갈 수 있느냐" 등을 묻고 나면 대개는 더 이상 이끌어낼 화제가 없다. 이런 환경에서는 아이들이 도덕적으로 성숙하기 힘들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라는 책을 만들기로 했다. 한 사람이 5분씩 이야기를 만든다고 가정하고 100명의 글을 모으면 500분 짜리 책을 꾸밀 수 있다고 계산했다. 이렇게 해서 책을 만들어 봤더니 문제가 생겼다. 내용이 너무 재미없고 딱딱해 아이들에게 흥미와 감동을 줄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방식을 궁리하고 있다. 사례 중심으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모으기로 했다. 흥미 있게 듣는 사이 감동을 느끼고 자기도 모르게 그 감동과 가르침이 마음속에 새겨지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책이 완성되면 박약회 회원 중에서 남 앞에 나서 교육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고를 작정이다. 이들을 통해 전국의 초·중·고생 학부모들에게 책을 나눠 주고 강습을 시킨 다음 어머니들이 자녀를 직접 가르치도록 할 요량이다. 우리 회원 각자가 이 책으로 자기 손자들을 가르쳐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