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시골에 농사를 많이 짓는 집에 머슴을 두던 시절의 이야기다. 일년 새경이 쌀 다섯 가마니부터 세 가마니까지 상·중·하 일꾼이 있었다. 물론 힘 잘 쓰는 일꾼이 상일꾼이다. 그래서 마을 일꾼들 사이에도 모내기, 밭매기, 벼베기, 지게질 같은 걸로 자신을 비교했다.그런데 할아버지의 평가는 달랐다. 내 기억으로 우리집에 힘 잘 쓰는 일꾼이 와 있었던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할아버지는 농사 일이 누가 모를 빨리 심으며, 밭을 빨리 매며, 지게질을 잘 하는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할아버지가 평가하는 것은 그의 요량이었다. 여름철에 논에도 일이 밀리고 밭에도 일이 밀릴 때 어느 것부터 먼저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요량할 수 있어야 하고, 밤에 비가 오면 스스로 알아서 다른 날보다 일찍 일어나 논물을 보러 갈 줄 아는 사람을 신용했다. 그래서 동네에선 2등 일꾼이 우리집에 오면 1등 대접을 받았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할아버지가 옳았다. 할아버지가 원하는 건 황소를 이기는 천하장사가 아니라, ‘동네사람이 딸을 주는 머슴’이었는데, 그런 아저씨가 우리 동네에도 지금 큰 부자로 몇 명 계신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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