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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클린턴과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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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클린턴과 박정희

입력
2004.1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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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지금 오른쪽인가, 왼쪽인가.미국 미시간대학의 메레디쓰 우 커밍스 교수는 최근 서울대 강연에서 "한국은 사회민주주의도, 신자유주의도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예컨대 외환위기 직후 실시된 기업지배구조개선 등의 경제 개혁조치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이는 가족중심경영과 같은 우리 경제의 후진적 기업관행을 바로잡는 ‘현대화(modernization)’의 과정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최근 사회복지 예산이 크게 늘어난 것 또한 유럽식 좌파인 사회민주주의 정책에 따른 결과라기 보다는 민주화를 실천하는 국가라면 어느 나라나 시행하고 있는 정책이다. 다시 말해 ‘민주화(democratization)’의 한 과정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자면 결국 우리는 선진국이 되기 위해 당연히 추구해야 할 현대화와 민주화를 실천하면서 불필요한 좌우 이념 논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좌파와 우파는 흔히 정부의 개입 정도나 국유화와 민영화 정책, 증세와 감세 등 경제 정책의 내용과 방향에 따라 구분된다. 하지만 실제로 특정 정책에 대한 좌우 구분은 구체적인 내용 보다는 그것을 주도한 사람의 이미지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클린턴 대통령은 재임기간에 신자유주의 정책인 자본시장의 국제화에 주력해 8년 만에 다우존스 지수를 약 4배나 높이는 등 미국에 고도성장을 안겼지만, 임기 초 추진했던 의료복지정책으로 얻은 이미지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중도 좌파(center-left)로 기억되고 있다. 그는 개인에게 맡겨져 있던 의료보험제도를 정부 지원 아래 국민 모두가 혜택을 받도록 바꾸려 했지만, 미국에서는 극단적 좌파 정책으로 인식돼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우파로 인식되고 있지만 재임 중 사회주의적이라고 평가 받는 의료정책을 단행했다. 지금도 의사들 사이에선 "사람 수술비가 강아지 수술비보다 못하다"는 불만이 나올 정도다. 고교평준화 정책 역시 30여년 전 박정희 정권 때 만들어졌다. 일부 언론으로부터 교육배급제라는 혹평을 듣고 있는 현행 교육제도는 이 고교 평준화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정책들에도 불구하고 경제개발로 상징되는 이미지 때문에 그를 좌파라고 평가하는 사람은 없다.

이처럼 좌우파의 논쟁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정작 정책 내용보다는 그를 추진하는 지도자의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 클린턴 대통령의 선거참모였던 딕 모리스는 ‘신군주론’에서 "정치인이 한 가지 이슈를 오랫동안 제기하다 보면 결국 그 이슈가 그 정치인의 이미지로 굳어진다"며 "결국 유권자는 이슈가 무엇이었는지는 잊어버리고 단지 이미지만 기억한다"고 설명했다. 특정 이슈에 대한 누적된 입장 표명이 정치인의 이미지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책에 대해 좌파적이냐, 우파적이냐를 구분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좌우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극단적으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현대 사회에서 특정 정치인이 좌파, 또는 우파로 인식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자신의 이미지가 오른쪽, 또는 왼쪽으로 비쳐진다고 해서 언론이나 일반 국민을 상대로 불평하는 것은 마땅치 않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거울을 탓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미지는 그 동안 여러 가지 이슈에 대해 취했던 입장에 따라 결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21세기 무한경쟁시대에 정치인들이 신경써야 할 이미지는 ‘좌파냐, 우파냐’가 아니다. 현대화와 민주화가 선진국의 조건이라면 이것을 기준으로 새로운 이미지 만들기에 힘써야 한다. 단지 오른쪽, 왼쪽으로 가르기엔 세상이 너무 복잡하고 유권자들도 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몽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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