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진 규 (시인)
꽃이 마침내 피었다 이 첫 겨울 아침
마루에 들여놓은
창가의 시크라맨 한 송이가
깊게 숙였던 겸허의 고개를 바짝
치어 들었다
꽃 필 때면 무슨 꽃이든 꽃들은 모두 그런다
개화는 마지막 절정으로 머문다
죽음 직전의 숨결
떨면서 뻗어나가는
그 절정의 직선을 직선의 적막을
나는 본 적이 있다
그 순간과 같다
개화와 낙화는 등을 맞대고 있다
선생님 가신 날 아침
마침내 꽃이 피었다
선생님은 그렇게 가셨다
선생님의 꽃은 어떤 꽃이었을까
키 작은 제비꽃이었을까
민들레였을까
수수꽃다리였을까
혹 나도 자네처럼 시크라맨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을까
지금 내가 부르고 있는 모두의 이름들이
내 꽃의 이름이라고 잠시 대답하시고
등돌려 가시는 적막의 무게가
허무의 무게가 하얗게 깔린다
좀 있다가 눈발이 또한
선생님 떠나신 길 위에
하얗게 깔릴 것이다
2004년 12월 1일
선생님 떠나시는 아침
정진규 엎드려 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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