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먼지가 가득 날리는 목욕탕 탈의실 바닥에 앉아 자장면을 비벼먹는 때밀이(지금은 ‘목욕관리사’라고 부르지만) 아저씨를 빤히 쳐다봤던 기억이 있다. 나는 그 아저씨와 매우 친하게 지내며 가끔 자장면 가락을 나눠 먹기도 했고, 아저씨가 주는 야쿠르트를 손에 쥐고 종종거리며 목욕탕을 뛰어다니기도 했다. 그러다 가끔은 미끄러운 타일에 자빠져 한바탕 울기도 했던 것 같다.혼자 목욕탕을 다니기 시작한 이후 나는 단 한번도 돈을 주고 때를 밀어본 적이 없다. 왜였을까? 아마 쑥스러워서겠지. 특히 내 안쪽 허벅지의 때를 밀기 위해 사타구니 이곳 저곳을 마구 문질러대는 게 창피했던 것 같다.
결혼하기 전날. 나는 철들고 처음으로 때밀이에게서 때를 밀었다. 늙수그레한 아저씨는 팔뚝이 나보다도 한참 얇았다. 그는 내내 헉헉대며 내 몸과 마음의 그 굵고 많은 때를 벗기고, 비누칠을 하고, 안마를 했다. 편하고 시원했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했다. 너무 고맙고 미안해서 담뱃값 하시라며 만원을 더 드렸더니, 신발 신는 곳까지 나와서 인사를 하신다. 점점 더 미안해진 나도 자꾸자꾸 그에게 인사를 했다. "고마워요, 때를 밀어줘서. 내 더러운 몸과 마음에 그나마 비춰질 곳을 만들어줘서."
무더웠던 지난 여름 어느날, 여러가지 일로 답답한 마음에 사우나에 들렀다가 두번째로 남의 손에 때를 밀었다. 이번에는 젊은 청년이다. 구릿빛 피부의 그는 싱글싱글 웃으며 "식사는 하셨나요?" "회사는 어디신가요?" 하고 묻는데 왠지 모르게 대답하는 내 목소리가 점점 굵어졌다. 영락없는 아저씨처럼 보이고 싶었다. 왜 그랬던 것일까. 나는 아직도 벗겨야 할 때가 너무 많다.
김양수
월간 PAPER 기자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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