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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자백하면 처벌 면해준다' 기업불법 캐내-공정위 조사 "이젠 게임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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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자백하면 처벌 면해준다' 기업불법 캐내-공정위 조사 "이젠 게임이론"

입력
2004.1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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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배신하면 처벌하지 않겠다."2004년 9월 중순 A배터리 본사 사무실. 공정거래위원회는 A사를 포함, 4개 배터리 제조회사의 담합 행위를 조사하고 있었다. 미리 입수한 증거로 2003년 한 차례 담합이 있었음을 적발한 공정위 조사요원이 제안을 했다. "추가 담합을 자백하면 다른 사업자만 처벌하고, A사 잘못은 묻지 않겠다". 그는 "나머지 회사에게도 똑같은 제안을 했다. 가장 먼저 자백해야 처벌을 면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A사는 게임이론의 하나인 ‘죄수의 딜레마’에 빠졌다. 4개 회사 모두 자백하지 않으면 처벌은 2003년 1건에 대해서만 이뤄진다. 그러나 누구라도 자백하면, 공정위가 밝혀내지 못한 2004년 1월과 4월 담합에 대해서도 처벌을 받아야 한다. A사는 자백을 선택했고, 공정위는 조사결과를 토대로 11월17일 18억4,8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배터리 담합’은 자백으로 공정위가 담합을 적발한 첫 사례가 됐다.

게임이론이 공정위 조사기법의 주류로 급부상하고 있다. 게임이론은 ‘사람은 최선책보다는 경쟁자를 이기는 현실적 선택에 만족한다’는 입장이다. 게임이론에 따라 사업자 간의 경쟁관계를 이용하면 ‘배터리 담합’처럼 과거에는 밝혀내지 못할 불법도 잡아낼 여지가 많게 된다.

공정위는 현장 조사로 불법 입증자료를 확보해온 전통적인 기법을 버리고, 관련 규정을 게임이론에 맞게 고쳐가고 있다. 담합 제보자 포상금을 최고 2,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올린 것이나, 신문고시 위반 신고자에게 포상금을 주는 방안이 대표 사례이다. 효과는 즉각적이다. 올 4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납품 담합을 내부 제보로 적발했고, 홈페이지에는 ‘우리 회사 담합 자료를 확보했다’며 포상금 규모를 묻는 질문이 쇄도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들도 게임이론을 역이용하고 있다. ‘시멘트 담합’ 판결은 업계가 게임이론을 내세워 승리한 대표 사례이다. 공정위는 1998년 12월 국내 7개 시멘트 제조업체에 ‘비슷한 비율로 가격을 담합 인상했다’며 6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으나, 최근 법원 소송에서 패했다.

공정위는 7개 업체가 비슷한 시기에 평균 14% 비율로 가격을 올린 것은 담합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시멘트 회사측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비율의 가격 인상은 게임이론에 따른 자연스런 사례"라고 반박했다. 경쟁업체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게 당연하므로, 가장 큰 업체가 가격을 올린 것에 대해 후발 업체가 자연스레 반응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기업체들은 직원들의 배신을 막기 위해 내부 단속을 강화하는 한편 ‘죄수의 딜레마’에 빠지지 않으려고 동업자와의 유대도 강화하고 있다. 이는 공정위가 조사를 진행 중인 정유와 신용카드업계 등에서 두드러지고 있다.미국에서는 조직과 동업자를 배신케 하는 게임이론에 근거해 불법 담합의 90%를 ‘죄수의 딜레마’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게임이론과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론은 ‘사람은 최선책보다는 경쟁자를 이기는 현실적 선택에 만족한다’는 입장이다. 죄수의 딜레마는 게임이론의 대표 사례로 경쟁자와의 관계 때문에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것을 보여준다. 범죄 용의자 A, B가 경찰에서 격리된 채 자백을 요구 받는다. 물증이 없기 때문에 A, B 모두 자백하지 않으면 무죄다. 경찰은 A와 B에게 "자백을 하면 형량이 3년에 불과하겠지만, 네가 자백하지 않았는데 상대방이 자백하면 형량은 10년이 된다"고 말한다. 용의자들은 자백을 않는 게 가장 합리적이지만, 경쟁관계에 있는 상대방에 대한 의심 때문에 자백을 선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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