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린 APEC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 미국대통령은 북한 핵문제를 ‘중대한(Vital)’ 의제로 설정하고 이를 ‘평화적방법’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이 발언은 그간 미국이 취해 왔던 압박 일변도의 전략에서, 일단 6자회담을 유용성 있는 다자간 틀로인정하는 정책 선회로 해석할 수 있다.이제 북한 핵문제는 새로운 차원에서 평화적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에 와있다. 이를 위해 관련 당사국들이 검증해야 할 점이 있다. 북한에 핵무기,혹은 핵무기 개발프로그램이 실제 존재하는 지 여부다. 북한의 의사나 희망 여부와 관계없이 실제 핵무기 개발 능력, 핵무기의 존재 여부 및 실전적운용 능력은 북핵 문제 해결에서 논리적 전제가 된다.
현재까지 관련 당사국 누구도 북한에 핵무기나 핵무기 개발프로그램이 있는가에 관한 구체적 증거를 갖고 있지 않다. 북한도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 분명한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간혹 북한이 모호한 발언으로 사태의 본질을 흐리면 그에 따라 한미 양국의 정책이 좌우돼 왔을 뿐이다.
‘북핵방정식’은 미지수 X가 너무 많은 매트릭스이다. 미지수를 단순화하기 위한 핵심열쇠는 북한의 핵무기 혹은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의 존재여부에 대한해답을 찾아내는 것이다.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다음과 같은 가정값을 대입하여 추론을 시도해 볼 수는 있다.
첫째, 가용한 고폭장치의 개발 여부다. 핵무기의 원료는 플루토늄의 재처리를 통해서 만들어지지만 폭발시키기 위해서는 특별한 고폭장치가 필요하다. 말하자면 고폭장치는 핵을 무기화하기 위한 필수 요건이다. 북한이 샘플형 고폭장치의 실험을 해봤다는 정보는 확인됐으나 고폭장치 개발에 성공했다는 증거는 없다.
둘째, 핵무기 운반체계의 확보 여부다. 핵무기의 주요 운반수단은 미사일이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노동)을 실험한 적은 있으나 아직 개발 단계일 뿐이어서 무거운 핵탄두를 싣고 먼 거리를 이상없이 날아갈 수 있는 운반체계를 갖추고 있는 지는 증명되지 않았다.
셋째, 운반체계의 정확도 문제다. 운반체계는 단지 먼 거리를 날아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목표지점을 정확히 타격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미국 등이 보유하고 있는 미사일의 정확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정확도는 곧 핵무기의 파괴력을 담보한다. 그런데 이러한 정확도는 고도의 전자, 통신, 레이다 공학의 총아이다. 전기가 부족해 공장도 돌리지 못한다는 북한이 과연 이러한 고급 공학기술을 개발할 단계에 와있는 지에 대해서도 의문의 여지가 있다.
네째, 핵무기 제조 및 운반을 위한 공학기술을 넘어 실전 핵무기 운용을 위한 전략적 사고를 갖추고 있는지 여부다. 2차대전 말에 핵무기의 위력을 실감한 인류는 냉전 시 극도의 군비 경쟁과정에서도 공멸을 자초할 핵무기를 실제로 사용할 엄두를 내지는 못했다. 결국 핵무기의 실제 파괴력 그 존재 자체를 가상 적국이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더욱 큰 관건이 됐다. 이러한 조건은 핵무기의 개발 및 배치 과정에서 가상 적국을 염두에 둔 고도의 전략적 사고를 요구한다. 국제적으로 고립된 북한이 벼랑 끝 외교가 아닌 유연한 핵전략적 사고를 운용할 수 있는 입장에 있는지 역시 의문이다.
이같은 일련의 논의에서 확인했듯 이후 6자회담에서는 북한의 핵무기 혹은 핵무기 개발프로그램의 존재 여부에 대한 진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북한과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단순하고 비이성적인 가정 위에 문제를 풀어나가서는 안 된다.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이고 근본적 해결을 위한 관련 당사국의냉철하고 이성적인 접근을 기대한다.
이용중
동국대 법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