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4년 11월30일 이탈리아 생리학자 마르첼로 말피기가 로마에서 작고했다. 향년 66. 볼로냐 근처의 크레발코레에서 태어난 말피기는 볼로냐대학에서 철학과 의학을 공부하고 피사대학, 메시나대학, 볼로냐대학 등지에서 가르쳤다. 생애의 마지막 네 해는 로마에서 교황 이노켄티우스12세의 시의(侍醫)로 일했다.말피기는 현미해부학의 창시자로 평가된다. 그는 개구리의 허파와 방광을 현미경으로 관찰해 모세혈관 내의 혈행을 발견한 데 이어 동맥에서 정맥으로의 이행을 확인함으로써, 영국의 윌리엄 하비가 초석을 놓은 혈액순환론을 완성했다. 해부학자로서 말피기의 이름은 말피기관(管), 말피기소체(小體) 따위의 용어에 남아있다. 말피기관은 거미·노래기·지네 같은 절지동물의 배설기관이다. 1669년 말피기가 누에에서 처음 발견한 이 기관은 척추동물의 신장에 있는 세뇨관과 같은 구실을 한다. 신소체(腎小體)라고도 부르는 말피기소체는 신세동맥(腎細動脈)으로부터 오줌의 성분을 걸러내는 장치다. 지름이 0.1~0.2mm로, 한 개의 신장에는 100만~150만 개의 말피기소체가 존재한다.
말피기관이나 말피기소체의 ‘말피기'처럼 어떤 표현의 뿌리가 된 사람이름을 에포님(eponym)이라고 한다. 한센병의 헨리크 한센(나병을 연구한 노르웨이 의학자)이나 루게릭 병의 헨리 루이 게릭(이 병으로 죽은 미국 프로야구 선수)이 에포님의 예다. 특히 수학이나 자연과학의 역사에서는 수많은 학자 이름들이 법칙이나 원리나 방정식의 에포님이 되었다. 아르키메데스 원리를 발견한 아르키메데스, 라플라스방정식·라플라스연산자·라플라스변환·라플라스전개 등의 피에르 시몽 드 라플라스(프랑스 수학자), 가우스적분·가우스정리·가우스사슬·가우스기호 따위의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독일 수학자) 등은 매우 잘 알려진 예다. 그런 에포님의 리스트에 한국사람 이름도 흔해졌으면 좋겠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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