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를 대표하는 단체들이 자주 거론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기업가 정신’입니다. 언뜻 한국적 경제상황을 반영한 ‘조어’(造語)처럼 보이지만, 실은 교과서에도 나오는 경제학 용어입니다.이 용어를 가장 먼저 사용한 사람은 1930년대 거시경제학의 체계를 확립했던 케인즈입니다. 그는 "투자는 이자율과 ‘야성적 본능’(Animal spirit)의 함수인데, 야성적 본능이 더 결정적"이라고 했습니다. ‘야성적 본능’의 순화한 표현이 바로 ‘기업가 정신’입니다. 이자율은 투자의 기회비용입니다. 기업인이 기대하는 투자수익률이 그 돈을 은행에 맡겨 놓았을 때 이자율보다 낮다면 당연히 투자를 포기하겠죠. 그러나 케인즈는 이자율보다 기업인의 마인드가 투자에 더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봤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케인지안’인 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최근 한 강연에서 "투자는 정주영, 이병철씨와 같은 사업가가 충동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정부가 일관성 있는 정책으로 시장의 불확실성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기업가 정신이 가장 충만했을 때는 1960~70년대입니다. 창업 1세대들은 불굴의 개척정신, 번득이는 아이디어, 투철한 상업정신으로 똘똘 뭉쳐 있었습니다. 그러나 외환 위기 이후부터 기업인들은 실패의 책임을 더 두려워 하게 됐습니다. 우리 경제가 처한 어려움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바로 ‘Animal spirit의 실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병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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