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최근 미국, 중국 등과 벌이고 있는 쌀 관세화(수입자유화) 유예협상에서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때와는 달리 ‘유예기간 만료 후 재협상’ 조항을 배제한 것으로 확인돼 파문이 예상된다. 또 이달 17일 ‘관세화가 유리하다’며 농촌경제연구원(국책연구기관)이 내놓은 보고서가 지나치게 낙관적인 가정을 토대로 작성됐으며, 정부가 애초부터 관세화를 전제로 협상국면을 끌어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29일 농림부와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UR협상 당시에는 ‘관세화 유예기간이 끝나면 유예여부를 재협상 한다’는 조항(‘UR 농업협정문 부속서 5’의 B 제8조)을 협정에 포함시켰으나, 이번 협상에서는 재협상 조항을 배제한 채 협상을 벌이고 있다. 이는 이번 협상에서 5~10년간 관세화를 유예 받더라도, 해당 기간이 지나면 쌀 시장을 자동으로 완전 개방한다는 것을 뜻한다.
정부 관계자는 "5~10년 후에도 관세화 유예를 주장하는 게 실익이 없을 것으로 보여 재협상 조항을 배제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농민단체와 시장개방 반대론자들은 "UR협상이 비록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재협상 조항’을 포함시켜 완전 관세화를 막았다는 측면에서는 높이 평가 받아야 한다"며 "정부가 국민에게 알리지 않고 ‘재협상’ 조항을 포기했다는 것은, 이미 관세화를 전제로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8%-10년 유예’를 협상 마지노선으로 정하는 과정에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농경연 보고서의 신빙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요컨대 ‘의무수입물량(MMA)이 7.5%를 넘으면 관세화 유예보다 관세화가 유리하다’는 대목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시장개방 비판론자들은 ‘관세화로 전환했을 때 2014년 쌀 수입량이 MMA 7.5%를 초과할 확률은 5%를 넘지 못한다’는 농경연 분석은 터무니없이 낙관적인 가정을 전제로 한다고 주장한다. 농경연은 관세화 전환에 따른 수입물량을 추정하면서 ▦도하개발어젠다(DDA) 농업협상에서 우리나라가 개도국 지위를 유지해 고율의 관세장벽을 높게 쌓을 가능성을 50% ▦향후 10년간 원·달러 환율이 1,050원을 유지한다고 가정했다. 다시 말해 관세화로 전환해 수입자유화가 되어도 실제 수입물량은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본 것이다.
한 관계자는 "케언즈 그룹 등 농업수출국과 유럽연합(EU) 등 주요 협상국들이 DDA 협상에서 한국의 개도국 지위 유지에 반대하고 있다"며 "개도국 가능성을 50%나 잡은 것은 극히 낙관적"이라고 평가했다. 관세화로 전환하면 우리나라는 DDA 협상이 린巢풉?전까지는 UR협상에 따라 300% 내외의 관세율을 적용받는다. 그러나 2007년말로 예상되는 DDA 협상 타결 이후에는 DDA에 따라 관세를 낮춰야 한다. 개도국으로 인정 받으면 쌀을 특별품목으로 인정 받아 관세를 덜 낮춰도 되지만, 선진국이 되면 관세를 급격히 낮춰야 하는 것이다.
또다른 관계자는 "이미 농경연이 기준으로 삼은 달러당 1,050원이 무너졌다"며 "환율이 900원대까지 떨어지면 관세화에 따른 예상 수입량은 8%를 훌쩍 넘어간다"고 주장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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