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3국 정상이 29일 라오스에서 환율안정과 이를 위한 공동노력의 필요성에 의견을 같이 했지만, 현재로선 선언적 의미 이상은 아닌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의 ‘약(弱)달러 공격’에 맞서 환율안정을 위한 ‘공동 액션’을 취하기엔 3국이 처한 입장이 워낙 달라, 달러약세의 거센 흐름을 역류시킬 수는 없을 것이란 게 시장의 반응이다.물론 지금의 달러약세가 세 나라에게 모두 반갑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과 일본으로선 달러약세가 경기회복에 부정적일 수 밖에 없고, 페그환율제(일종의 고정환율)를 택하고 있는 중국에겐 달러약세 만큼 위안화 절상압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이 3국 공히 ‘달러약세가 지나치다’고 말할 수 있는 배경이다.
하지만 달러약세에 대한 피해의식은 서로 다르다. 가장 초조한 쪽은 한국인 반면, 일본은 그럭저럭 버틸 만하고, 중국은 배짱을 튕길 수 있는 위치다.
우선 일본은 ‘1달러=100엔’까지는 충분히 견딜만 하다는 입장이다. 지난해부터 올초까지 무려 35조원에 달하는 돈을 쏟아 붓는 대단위 시장개입을 단행했지만, 지금은 102엔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간헐적 구두개입 시사 외엔 별다른 행동에 나서지 않고 있다. 경기회복에 대한 자신감, 개입의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 섣불리 개입할 경우 ‘위안화 절상압력’을 희석시켜 미국과 불편해질 수도 있다는 우려 등으로 인해, 일본 중앙은행의 불개입 노선은 상당기간 계속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중국은 이번 달러약세 공습의 주요 타깃 중 하나다. 국제금융가에선 "중국이 위안화 절상을 단행할 때까지 미국의 달러약세 공격은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자칫 ‘경기 경(硬)착륙’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안화 절상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며, 미국의 환율압력이 거세질수록 ‘고개를 더 세우는’ 특유의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 부총재가 지난주 "미국은 자국의 경제문제(쌍둥이 적자)를 다른 나라 탓(위안화 절상)으로 돌리지 말라"고 직격탄을 날린 것이나 원자바오 총리가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위안화 절상은 여건과 시기가 중요하다"며 환율제도 조기개편에 부정적 입장을 표시한 것 등이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한국은 경기버팀목인 수출증가폭이 현격히 둔화하는 상황에서 환율마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절상되고 있어, 가장 다급한 입장이다. 시장개입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일본과 개입타이밍을 맞춰야 하지만, 아직 일본의 공조움직임은 없다. 그렇다고 중국에 환율제도 개편을 요구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날 정상회담에서 당초 의제에 없던 환율문제를 꺼낸 것도, 중·일과는 다른 우리나라의 이런 절박한 경제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언적 언급 이상의 실천적 공동보조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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