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의 정책이 반환경적으로 치우치고 있어 환경단체들이 ‘환경비상시국회의’를 구성, 대정부 활동에 나섰다. 환경문제로 비상시국까지 선포한다는 것이 일견 지나쳐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환경운동은 현재와 미래를 포괄한다는 점에서 대안적 사고방식을 요구한다. 즉 현재 참여정부의 각종 정책이 가시화할 경우 미래 삶의 질은 현저히 떨어지리라는 것이다. 자연재앙이 훨씬 더 빈번해지고, 개인주의와 물질주의가 극에 달하면서 위기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환경운동단체들이 환경비상시국임을 선언한 이유는 크게 네 가지다. 첫째, 개발정책 수단의 위험성이다. 군사독재정부,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를 막론하고 각종 개발사업에 치중해 왔다. 특히 직전 국민의 정부는 금융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諭毒?개발사업을 출범 초기부터 벌였고, 근 30년 동안 유지돼온 그린벨트도 해제했다. 하지만 현재 참여정부의 개발정책이 훨씬 더 위험하다. 규모의 방대함, 재임기간내 성과에 집착한 무모함, 기존 법제도 질서까지도 후퇴시키는 왜곡된 과단성 때문이다. 재경부장관의 골프장 230개 건설 발언, 한 술 더 뜬 건교부장관의 2,000개 건설 발언, 새만금에 540홀짜리 세계 최대 규모 골프장 을 짓겠다는 전북도지사의 발언 등 참여정부에서 쏟아내는 구호들에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심한 개발 만능주의가 깔려 있다.
정부가 추진중인 기업도시특별법은 기존 국토제도의 근간을 완전히 허물어 버리는 제도적 반란이다. 외국인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경제자유구역법,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특화특구법 등 그 어떤 법률보다도 위임범위와 특혜 규모가 크다. 택지개발촉진법으로 신도시를 건설하던 과정에서도 주민들과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는 판국에, 기업에게 토지수용권을 주고, 막대한 개발이익을 보장해주는 방식으로 신도시를 건설한다면 ‘제2의 부안사태’가 벌어지지 말란 보장이 없다. 기업도시특별법이라는 무소불위의 개발수단을 통해 국토와 인권을 잠식해 들어갈 것이다.
둘째, 참여정부의 국정과제 자체가 개발사업의 백화점이다. 국가균형발전, 지방분권이라는 명제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을 추진하는 과정에 왜 환경적 고려는 없는가? 정부가 밝히고 있듯 국가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이 우리나라의 미래 희망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미래는 지역에 혁신도시를 건설하고, 공공기관을 이전하고, 신행정수도를 건설하는 것만으로 가능한가? 개발총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국민들의 삶을 희망적으로 바꿀 수 없다.
셋째, 정책의 일방주의와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정부 내에 균형감각을 갖고 환경문제를 조정할 수 있는 기능이 없다. 환경부는 경제부처의 고압적 자세와 추진력에 맥을 못 추고 있다. 지속가능한 발전의 관점에서 대통령을 자문해야 할 지속가능발전위원회는 대통령이 던지는 아젠다에 대해 ‘열심히 연구해서 보고하는’ 수준의 역할에만 머물고 있다. 청와대 어느 구석에도 환경 목소리가 반영될 여지가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참여정부에서 내놓는 정책 대부분이 개발정책 일색이다.
넷째, 사회적 저항력이 미약하다. 정부 스스로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유일한 견제역할은 시민사회의 몫이다. 하지만 그 동안 환경운동은 현안 하나하나에 발목이 잡혀 사회 전반의 문제는 미처 돌아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1990년대에 성숙한 듯 했던 시민 환경의식도 2000년대에 들어서 물질주의와 개인주의에 포섭됐다. 시민사회까지 희망을 보여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환경비상시국’이라 아니할 수 없다.
개발만으로 미래를 열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비전도 없이 그저 목전의 경제위기 타개를 위해 개발만을 외치는 정부에 안타까움과 연민을 느낀다.
오성규
환경정의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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