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찾아봐도 마땅히 투자할 데가 없다. 투자를 서둘러야 할 필요성도 크게 없다. 누가 뭐래도 재무구조를 튼튼히 하는 축소경영이 최선이다. 투자를 해도 은행이 도와주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꼭 투자를 한다면 외국의 자본재를 수입 해 쓰는 게 낫다."삼성경제연구소가 29일 ‘투자가 부진한 5가지 이유' 보고서에서 분석한 한국 기업의 현 주소다. 연구소는 현재 한국 기업들은 투자할 대상도, 필요성도, 의지도 크게 없다고 진단했다.
환란 이후 기존 주력산업의 뒤를 이를 새로운 유망산업이 부상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한국경제가 ‘경공업→중공업→정보기술(IT)’으로 조정을 거칠 때, 한국기업들은 ‘가발·섬유→석유화학·철강→자동차·조선→반도체·LCD·휴대폰’ 등의 주력상품을 만들어 왔다. 그러나 이 산업들이 수요 한계, 과잉 설비에 노출되면서 투자확대가 힘들게 됐다. 여기에다 원천기술 부족으로 신산업 진출도 쉽지 않다.
연구소에 따르면 경기 상승기간이 단축되면서, 설비를 확대할 필요성도 감소했다. 경기 상승기간이 평균 34개월에서 2001년 이후 12개월로 단축되면서 가동률 제고로 수요에 대응하면 된다는 것이다.
환란 이후 경영 패러다임이 ‘확장’에서 ‘위험관리’로 바뀐 것도 투자를 제약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범식 수석연구원은 "재무구조 중시풍토와 단기실적 위주의 경영인 평가로 기업가의 도전정신이 약화하고, 기업의 축소경영 패턴이 고착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해말 제조업 부채비율(123.4%)은 미국(154.8%), 일본(156.2%)보다 낮지만 기업들은 현금 보유비중만 확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연구소는 투자를 견인하고 이끌어 줄 원군(援軍)도 실종됐다고 분석했다. 개발연대에는 정부가 투자의 지휘자 겸 보험자의 역할을 담당했고, 환란 전에는 그룹차원에서 상호출자 등 내부금융으로 투자를 견인했지만 지금은 이런 역할을 해주는 곳이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김 연구원은 "과거 정부와 그룹이 담당하던 투자견인 역할을 금융이 담당해야 하지만, 은행은 안전위주 경영을 보이고 있고 자본시장은 투자자금 조달처로서의 한계를 노출했다"고 말했다.
특히 수출이 호조를 보이면서 투자가 일부 확대됐지만 기업들은 국산설비보다 수입자본재에 의존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수출이 급증한 지난해 9월 이후 설비용 기계의 수출은 5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보인 반면, 자본재·기계류 수입증가율은 20%대 이상의 증가세다. 김 연구원은 "투자부진의 이유가 복합적이기 때문에, 한 두 가지 대책으로 성과를 내기 어렵다"며 "모든 경제주체가 ‘왕성한 투자는 성장의 원천’임을 확고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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