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12월1일 취임 17주년을 맞는다. 셋째 아들인 그를 일찌감치 그룹후계자로 점 찍고 21년에 걸쳐 혹독한 경영수업을 시킨 이병철 회장이 1987년 11월19일 77세를 일기로 타계했을 때 그의 나이는 46세. 이제 이순(耳順)의 나이도 훌쩍 넘긴 이 회장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된 ‘신 경영’으로 시가총액 120조원대, 연 순익 14조원대에 이르는 삼성왕국을 이끌면서 각종 여론조사에서 ‘가장 닮고 싶고, 존경하고, 신뢰하고, 선망하는’ 사람으로 꼽힌다. 최근엔 파이낸셜타임스가 선정한 ‘가장 존경받는 세계 재계 리더’ 45인 중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21위에 올랐다.■ 해마다 이맘때면 이병철·이건희 부자의 리더십을 비교하는 얘기들이 흥미를 끈다. ‘의인불용 용인물의(疑人不用 用人勿疑, 믿지 못하면 맡기지 말고 등용하면 믿고 맡겨라)’는 용인술로 인재를 키워온 것은 부자의 공통된 덕목. 반면 꼼꼼한 현장관리와 함께 신상필벌의 냉정함으로 유명한 아버지와 달리 아들은 자율적·수평적 조직문화를 도입하며 유목민적 전략과 사고를 중시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돌다리를 두들겨본 뒤 다른 사람이 건너가는 것을 보고 건너간다’‘돌다리든 뗏목다리든 나무다리든 뭐든지 건너라, 그래서 실패하면 기록해 자산으로 만든다’는 얘기는 두 사람의 성향을 단적으로 대변한다.
■ 평소 말하기보다 듣기를 즐기는 이건희 회장은 얼마전까지 외국기업 총수들을 만날 때마다 심각한 침체국면에 있는 우리 경제에 대해 낙관적 견해를 피력해 관심을 끌었다. 환율쇼크가 오기 전의 일이어서 지금은 어떤 생각인지 모르나 그의 희망 메시지는 단순한 ‘립서비스’라기보다 사회 리더로서의 책임감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됐다.
■ 그러나 어디에도 그늘은 있는 법. 서울행정법원은 최근 "이 회장의 장남 재용씨 등이 1999년 삼성SDS가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헐값에 인수한 것은 변칙 증여에 해당한다"며 국세청이 443억원의 증여세를 물린 것은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참여연대 등이 제기한 편법 상속·증여 소송에서 줄곧 이기며 올해 36세인 재용씨로의 승계과정을 소리없이 진행해 온 삼성으로선 불패신화가 깨지면서 가장 민감한 과제를 떠안은 셈이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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