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쟁점과 전망‘극(極)과 극.’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를 둘러싼 여야 입장은 이렇게 표현될 수 밖에 없다. 열린우리당은 일찌감치 국보법 폐지안과 형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한나라당은 "여당이 폐지 방침을 철회하지 않는 한 대화하지 않겠다"며 타협을 원천봉쇄하고 있다.
양당의 대립을 구체적으로 보면, 북한을 규정하고 있는 국보법 2조 반국가단체 조항 중 ‘정부참칭’삭제문제가 가장 첨예하다. 우리당은 이를 삭제하는 대신 형법 87조 내란죄에 ‘내란목적단체’ 조항을 신설, 북한을 규율하고 단체 구성과 가입도 처벌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참칭 삭제는 헌법의 영토조항에 위배될 뿐 아니라 북한이 비폭력 사상전만 펼칠 경우 규율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결사 반대하고 있다.
대표적 ‘독소조항’으로 꼽히는 찬양고무죄(7조)를 두고도 우리당은 "삭제하더라도 조직적 행위 등 목적이 명백한 경우에는 형법상 내란죄의 예비음모·선전선동으로 처벌 할 수 있다"는 주장인 반면 한나라당은 "구성요건을 엄격화 해 남용을 막으면 된다"는 입장이다. 잠입·탈출(6조), 회합·통신(8조) 조항에서도 양당은 같은 논리로 맞서 있다. 그나마 접점이 있는 대목은 불고지죄(10조) 삭제 정도다.
우리당엔 한나라당의 저항이 강력한데다 여론의 뒷받침 또한 시원치 않자 최근 속도조절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의장이 "산이 높으면 돌아가야 한다"고 언급한 데 이어 다수 중진과 보수 성향 의원들도 "국보법 폐지를 일방 강행할 경우 엄청난 역풍을 맞을 것"이라며 한나라당과의 타협을 강조하고 있다. 당론채택 과정에서 배제됐던 대체 입법론도 다시 세를 얻어가는 분위기다.
천정배 원내대표가 연내 처리 방침을 재확인하면서도 "야당과 대화와 타협을 하게 된다면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시사점이 있다. 상황에 따라 처리를 내년으로 미룰 수도 있고, 협상을 통해 대체입법을 수용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한나라당에서도 당내 최대 모임인 ‘국가발전연구회의’가 국보법 명칭 변경, 참칭 조항 조건부 삭제 등을 담은 개정안을 내놓았고, 소장파 모임인 ‘수요모임’도 명칭 변경, 참칭 조항과 단순 찬양고무 삭제 등 전향적 내용의 개정안을 마련했다. 양쪽 모두 대체입법도 가능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박근혜 대표를 포함한 당내 대세는 "여당이 국보법 폐지를 포기하면 개정협상에 응하겠다"는 쪽이어서 양당의 협상과 합의처리는 여전히 먼 얘기로 들린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 국보법 개정 과정
국가보안법은 1948년 여순사건 등 당시의 비상시국에 국한된 한시법으로 탄생해 7번 개정됐다.
이어 자유당 정권은 58년 말 민심이반이 심각해지자 ‘인심을 혹란케 하여 적을 이롭게 한 자’를 처벌하는 이른바 ‘인심혹란죄’를 신설, 제3차 개정을 시도한다. 무술 경위들을 국회 본회의장에 불러들여 야당 의원들을 끌어내고 통과시킨 이른바 ‘2·4 보안법 파동’이다.
4·19혁명으로 탄생한 민주당 정권은 60년 독소조항을 삭제하는 큰 폭의 손질(4차 개정)을 했다. 그러나 이 때 ‘불고지죄’가 신설된 것은 아이러니다.
61년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이 반공법을 제정한 이후 국보법은 한동안 ‘막걸리 반공법’의 위세에 눌려있었다.
하지만 80년 신군부 세력이 국가보위입법회의를 통해 반공법의 처벌 조항을 흡수 통합한 6차 국보법 개정안을 통과시킴에 따라 형량은 훨씬 강화됐고 위반사범도 양산됐다. 5공은 국보법의 시대였다.
여소야대가 된 13대 국회에서 국보법은 대표적인 ‘악법’으로 지목됐고, 91년 야당인 평민당이 대체입법안을 제출했으나 여당인 민자당은 불고지죄 적용대상을 축소하는 등 일부 조항을 개정, 단독으로 7차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 여야 의원 입장
◆ 최재천 열린우리당 국회 법사위 간사
- 국보법 폐지는 헌법의 영토조항을 위반하고 헌법이 채택한 방어적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위헌 아닌가.
"우리당의 폐지안은 북한의 합헌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형법에 내란목적단체 조항을 신설한 것 자체가 북한의 영토 불법 점유 등을 전제한 것이다. 북한 노동당도 내란목적단체로 보고 처벌하는 데 왜 방어적 민주주의를 포기했다고 하느냐."
- 정부참칭을 삭제하고 내란목적단체로 북한을 규정하면 북한이 무력침공을 기도하지 않은 한 북한을 규율할 수 없지 않은가.
"북한은 국방위원장이 통치하는 선군 정치인데다 무력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때문에 북한이 무력침공을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틀린 말이다."
- 국내 인사가 평양에서 열린 북한 노동당 행사에 허가 없이 참가하더라도 형법 개정으로는 처벌이 어려운 것 아닌가.
"왜 갔느냐가 중요하다. 만약 노동당 조직원으로 갔다면 내란죄의 중요한 임무에 종사한 내란목적단체 구성원으로 처벌할 수 있다. 단순 호응 차원에서 갔더라도 내란죄 예비음모 내지 선전선동 혐의로 충분히 처벌할 수 있다."
- 북한을 찬양하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해도 형법개정으로는 처벌이 안 된다는 지적이 많다.
"역시 왜 했느냐가 중요하다. 가령 정신병자의 행위는 처벌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타인을 충동하려 했거나 집단으로 했다면 해당 조직과 구성원을 내란목적단체 구성죄로 처벌하거나 최소한 내란죄 예비음모·선전선동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 국보법 폐지가 시기상조라는 국민 여론이 높다.
"국보법 폐지는 국민 기본권 보장을 위한 것이다. 집권여당으로서 공개적 대화를 통해 국민이 원하는 합리적 결론을 도출할 자세가 돼 있다. 결코 일방통행하지 않을 것이다."
정녹용기자
◆ 장윤석 한나라당 국가보안법 개정 준비특위 간사
-한나라당은 대안도 없이 국보법 폐지에 반대만하는 것 아닌가.
"국민이 원하지 않는 국보법 폐지안을 여당이 거둬 들이는 게 우선이다. 여당이 개정의 장으로만 나온다면 언제 어디서든 무엇을 놓고서도 협상할 수 있다. 우리는 당내 특위를 통해 곧 대안을 내놓을 것이다."
-최대 쟁점인 정부참칭 조항 삭제여부를 놓고 당내 이견이 있다.
"정부참칭 조항이 한반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한 합법 정부임을 천명한 헌법의 영토조항을 뒷받침하는 것 이라는 데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삭제가 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동의한다. 다만 변화한 남북관계를 고려한 여러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국보법 폐지 후 형법보완으로도 북한을 내란목적단체로 규율 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은데.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형법에 내란·외환죄 조항이 있음에도 일관되게 국가보안법의 독자적 존재의의를 인정하고 있다. 여당의 형법개정안은 마치 새로운 것을 보완 신설하는 것처럼 국민을 속이는 위장 보완이다. 보완된 것이 전혀 없다. 여당의 안으로는 북한 김일성 체제나 주체사상을 선전하는 사상전에 대응할 수 없다. 심지어 공산당 합법화를 주장해도 처벌할 길이 없다."
-찬양고무죄나 불고지죄 등이 인권침해에 악용돼온 것은 사실 아닌가.
"1991년 국보법 개정 이후 찬양고무죄가 악용되거나 남용된 사례부터 제시해 주기 바란다. DJ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악용하거나 남용한 사례가 있다면 스스로 고백해 보라. 집권자가 악용·남용하지 않으면 된다. 법장 스님 말씀대로 살인에 쓰인다고 해서 칼을 없애면 요리는 무엇으로 할 것인가. 불고지죄는 얼마든지 삭제여부를 논의할 수 있다."
이동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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