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_소 냉전이 한창이던 1960~70년대 서방측은 철의 장막에 싸인 크렘린의 대외정책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 언론보도를 면밀히 분석했다. 권력에 의해 통제된 당시 소련 언론들은 권력이 원하는 내용만을 보도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언론에 보도된 의전절차나 성명, 핵심인사의 대외메시지 등을 잘 분석할 경우 소련 정부의 대외정책 변화를 읽을 수 있게 하는 효과를 가져 왔다. 학자들은 이 기법을 크렘리놀로지(Kremlinology)라고 명명했다. 구소련 권력의 상징 크렘린에 학문을 뜻하는 올로지(ology)를 붙여 합성해 만든 용어다.■ 지구상에서 정보가 가장 철저히 통제된 국가로 남아 있는 북한이야말로 크렘리놀로지 기법으로 변화를 가늠할 수밖에 없는 나라다. 최근 북한 관영언론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호칭하면서 늘 붙여 오던 ‘경애하는 지도자’라는 수식어를 생략한 사실에 각국과 세계 언론들이 비상한 관심을 보인 것도 다분히 크렘리놀로지적 접근이다. 김 위원장 호칭 변화는 북한의 외교 관련 시설에서 김 위원장의 초상화가 철거된 것과 맞물려 온갖 억측을 불러일으켰다.
■ 성급한 일부 외국 언론들은 북한 내부에서 정변이 진행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상 징후설을 부풀렸다. 김정일 체제 붕괴에 관심이 많은 외신들은 김 위원장 부인 고영희 사망 후 후계체제를 둘러싼 암투설, 북한의 휴대폰 서비스 중단설, 반 김정일 삐라 살포설 등 그동안 떠돌던 온갖 설을 덧붙이며 북한의 체제 불안을 증폭시켰다. 급기야 증권가에는 김정일 사망설까지 떠돌아 주가에 영향을 미칠 정도까지 됐으나 중국 외교부가 "근거가 없다"고 일축함으로써 또 한번의 어이없는 소동으로 끝났다.
■ 북한 체제의 작은 변화 징후가 과도하게 해석되고 턱없이 부풀려지는 것은 정확한 사실 파악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김정일 체제 붕괴를 바라는 기대심리가 작용한 탓이다. 그러나 과도하게 정보를 통제하고 외부세계와 담 쌓고 있는 북한의 폐쇄성이 유지되는 한 이러한 소동은 계속될 것이다. 북한은 평양올로지(Pyeongyangology)라는 달갑지 않은 용어가 생기기 전에 보다 투명하게 세계에 자신들을 알릴 필요가 있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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