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가 어렵다. 안팎의 예측들은 내년이 금년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 뿐이다. 아무리 고생이 심해도 언제 끝날지를 알면 그나마 덜 괴로울 테지만, 지금 한국 경제의 어려움은 언제 끝날지도 불분명하다.한국경제의 침체가 장기화되고 회복조짐이 안 보이는 것은 그만큼 경제의 체질과 유연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체질이 강하고 유연하면 경기회복 속도가 빠르고 외부로부터의 충격에 강하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단기부양정책보다 근본적으로 경제의 체질을 강화시키는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
일부에서는 기업의 소유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대기업의 출자총액을 규제하면 경제체질이 강화된다고 하나 이론적 가능성일 뿐이다. 오히려 경제학의 수많은 연구결과?시장이 개방되고 경쟁적일수록, 기술과 설비투자가 왕성할수록, 그리고 생산요소와 자원이 시장원리에 따라 유연하게 배분될수록 경제의 체질이 강하고 경쟁력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경제에 문제가 생긴 것은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기업들이 기술과 설비투자를 안하고, 생산요소 시장이 경직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경제의 성장잠재력은 장기적으로 하강 추세를 보이고 있다. 1990년대 초 8%를 넘던 잠재성장률이 지금은 4%대로 낮아졌다. 그 동안에도 한국경제는 그 성장률 위아래를 오르내리면서 단기 불황과 호황을 경험했다.
예를 들어 2002년엔 경제성장률이 6.3%에 달하는 반짝 경기를 경험했다. 잠재성장률을 넘는 성장이니 체감경기가 좋았던 것은 당연하다. 이것은 2000년부터 금리를 낮추어 돈을 풀고 가계대출과 신용카드 대출을 늘린 결과 내수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 풀어 소비를 늘리는 경기부양은 효과가 단기적이다. 빌린 돈은 언젠가 갚아야 하는 법이고 그 후유증이 2003년 이후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경기 침체다. 정부가 다시 재정지출을 늘리고 연기금을 동원해 총수요를 늘리겠다고 한다. 그 때문에 경기가 일시적으로 되살아 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2002년의 반복일 뿐이다. 당시 가계부채로 경기를 띄운 것이나 지금 정부부채로 경기를 띄우는 것이나 빚지는 주체가 다를 뿐 결국 효과는 같다.
지금 정부가 온갖 궁리를 다해 경제를 살리고자 해도 한계가 있는 것은 바로 성장잠재력의 하락이라는 장기 추세를 이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한국경제의 경기상승국면이 단기화하고, 하강국면이 장기화하고 있는 것이 그 증상이다.
그러므로 우선 한국경제의 성장잠재력 하강 추세부터 막아야 한다. 성장잠재력을 높이려면 경제의 생산 공급능력이 늘어나야 한다. 생산 공급의 주체는 기업이다. 기업은 기업가와 근로자가 일하는 곳이다. 기업가나 근로자나 지금 모두 마음이 본업에서 멀어져 있다. 기업가는 사업의욕이 없고, 근로자는 근로의욕이 없다. 그래서 지금 한국경제의 생산능력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왜 이렇게 됐는가.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가. 기업가를 안심시키고 노사관계를 안정시킬 책임은 정부에게 있다. 그런데 정부 여당은 오히려 개혁의 이름으로 기업인들 기 죽이기, 먹고 사는 일과는 무관한 법안 통과에 더 열심이다. 노조는 투쟁지상주의에 빠져 국민경제는 외면한 채 시도 때도 없이 불법 파업이고 파업 위협이다. 그 결과가 불안한 정치, 불안한 노사관계, 저조한 투자, 높은 실업, 침체된 경제다.
국가안보가 불안하고, 정치 사회적으로 혼란한 나라에서 경제가 잘 된다면 기적이다. 정부가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받지 못하면 어떤 경제정책도 효과가 없다. 한국경제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그 원인도 알고 처방도 다 나와 있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의지가 없는 것인가, 아니면 능력이 없는 것인가.
김종석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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