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거래소 이사장후보 전원 사퇴 파문은 공공(公共) 인사시스템의 총체적 난맥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정부는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를 표방하며 산하기관 인사에 잇따라 공모 방식을 도입하고 있지만, 내용상으로는 이전의 밀실 인사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오히려 애초 가능성이 없는 이들을 ‘공모 흥행’을 위한 들러리로 전락시키고 있을 뿐이다.통합거래소 사태는 청와대와 정부의 이견이 갈등으로 표출됐다는 점에서 올 초 주택금융공사 사장 인선 잡음과 닮아 있다. 당시 공모 시작 전부터 재정경제부 출신 K씨의 사전 내정설이 나돌았지만, 막판에 민간 출신(KB부동산신탁 대표)인 정홍식 현 사장으로 낙점되면서 파문이 확산됐다. ‘모피아(재무부 출신 관료) 독식’을 견제하려는 청와대의 의지가 ‘민간’으로 포장된 또다른 ‘낙하산 인사’를 낳은 경우였다. 목소리를 내야 할 추천위원들은 ‘고래 싸움’을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던 셈이다.
금융결제원은 4월 설립 이후 처음으로 공모를 통해 신임 원장을 맞았지만, 추천위원 5명 중 4명이 한국은행 출신으로 채워지는 등 구성의 편향성으로 언론의 뭇매를 맞았다. 공모 방식은 아니었지만 4월 신임 금융통화위원 선임 과정에서도 유력 후보가 지역 안배 차원에서 배제된 반면, ‘이헌재 사단’으로 분류된 인사들이 발탁돼 뒷말을 낳았다.
이처럼 유사한 잡음이 되풀이되는 것은 현행 공모방식이 낙하산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한 ‘이벤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공모 시작 전부터 "누가 내정됐다" "OOO에서는 A씨를 밀고 있고, XXX에서는 B씨를 밀고 있다" 는 식의 설들이 제기되고, 이는 대부분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현재 공모가 진행중인 기관장 인선 역시 예외가 아니다. 통합거래소 인사 파문으로 불똥이 튈 것이 예상되지만, 지금까지 자산관리공사 이사장에 김우석 신용회복위원장, 예금보험공사 사장에 김규복 전 재경부 기획관리실장의 내정설이 파다하다. 금융계 고위 인사는 "윗선에서 내정을 하고 추천위원들은 그 뜻에 따라 형식만 갖춰주는 허수아비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인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공모(公募)’가 아니라 특정 인물을 밀어주기 위한 ‘공모(共謀)’라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 고위 인사는 "학연이나 지연, 혹은 보은(報恩) 차원의 자리 만들어주기 관행이 변하지 않는 한 선진적인 인선 시스템 도입에도 불구하고 잡음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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