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따뜻한 이불 속에서 잠에 푹 빠져 있을 일요일(28일) 새벽 6시. 검게 얼룩진 마스크에 고무장갑을 낀 근로자 20여 명이 허연 입김을 내뿜으며 연신 연탄을 트럭에 싣고 있다. 트럭 50여 대가 차례를 기다린다.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삼천리E&E. 옛날 삼천리연탄이다. 금천구 시흥동 고명산업과 함께 서울에 마지막 남은 연탄공장이다. 생산 담당 상무 김두용(54)씨는 요즘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란다. 경기는 얼어붙고 기름값은 치솟으면서 주문이 폭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새는 새벽 5시 30분부터 밤 8시까지 꼬박 찍어내도 손이 모자라요. 작년 이맘때 하루 생산량이 20만 장쯤 됐는데 요즘엔 30만 장을 찍어요. 하지만 주문은 40만 장에 가까워 이렇게 3주째 일요일 비상근무를 해도 소용이 없六? 올해 들어 혼자 사는 노인이나 영세 식당, 사무실 등에서 연탄난로를 많이 들여놓고 있어요." 그는 "모자라는 물량만큼 서민들의 겨울밤이 추울 것 아니냐"며 안타까워했다.
김 상무는 연탄 업계의 산 증인. 강원 태백공고를 졸업하고 1971년 대한석탄공사에 들어갔다가 79년 석탄 분석 능력을 인정받아 삼천리연탄으로 옮겼다. "서울시내 연탄 사용 인구는 지금은 0.8%에 불과하지만 80년대 초만 해도 90%에 가까운 400만 가구나 됐습니다."
연탄가스를 마시고 동치미 국물을 들이키던 기억을 지닌 세대가 점점 줄어드는 요즘이지만 천직에 대한 자부심은 여전하다. "70년대 오일 쇼크부터 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요즘의 고유가에 이르기까지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연탄은 없는 이들에게 버팀목이 돼 주었지요. 요즘에는 중국이나 몽골에서 연탄 찍는 기술을 배우러 국가 차원에서 연수를 옵니다."
이문동엔 한 때 연탄공장이 17개나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기름보일러와 도시가스가 보편화하면서 나머지는 모두 문을 닫았다. 300명 넘던 직원도 지금은 22명에 불과하다. 현재 가동하는 윤전기는 10대. 85년 당시 대당 2,500만 원에 구입했는데 지금은 만드는 곳도 없어 영락 없는 골동품이다.
김 상무는 요즘 걱정이 하나 더 늘었다. 마포구 상암동의 수색 저탄장 비축분이 20만 톤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정부 비축탄이 바닥나면 68년 이후 계속 돌렸던 윤전기를 멈춰야 할지 모른다.
"겨울철 가정집이나 작은 사무실 월 평균 난방비는 석유가 30만 원대, 도시가스가 12만 원쯤 합니다. 반면 연탄은 5만~6만 원이면 됩니다. 300원짜리 22공탄 한 장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아십니까? 우리 경제가 이만큼 큰 데는 연탄의 힘도 컸어요. 연탄 공장이 없어지면 저소득층은 찬 겨울을 어떻게 나겠습니까?"
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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