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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나는 백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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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나는 백치다

입력
2004.1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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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티에난은 아이큐가 70이다. 국수장사를 하는 어머니, 똑똑하고 예쁜 여동생과 산다. 초등학교 6년 동안 내리 18반이라는 특수반에서 수업 받았다. 하지만 중학교에서는 보통 아이들과 함께 공부해야 한다. 중학교 첫 등교일. 교문 안으로 들어서자 무섭게 생긴 남자선생님의 호통이 날아왔다. "너 바보냐? 9시10분에야 학교에 오다니, 얼른 가서 손 들고 서 있어."그래, 펑티에난은 바보다. 친구들이 놀려 먹는대로 "정신지체아"고 "백치"다. 하지만 펑티에난은 이런 바보다. 운동장 한바퀴 돌기 시험을 치르는 체육시간. 펑티에난은 1학년 교실을 지나고, 단상 앞을 지나, 체육 선생님이 있는 곳을 지나쳤다. 눈 깜짝할 사이 한 바퀴를 돌고 같이 뛰다 뒤쳐졌던 절름발이까지 따라 잡았다.

"한바퀴 돌았으며 됐어. 돌아와! 이제 됐다니까!" 체육 선생님이 소리쳤지만 펑티에난은 계속 뛰었다. "이 백치 녀석, 내가 한 바퀴만 돌면 된다고 했잖아. 뭐 하러 두바퀴나 도는 거야?" "제가 한바퀴 더 달린 건 절름발이에게 주려고요." 여동생이 길가에 넘어졌는데도 동생이 싫어할까 봐 얼른 다가가지 못하고 눈치만 보는 아이가 펑티에난이다.

대만 작가 왕수펀(43)의 ‘나는 백치다’는 마음 착한 펑티에난이 중학교에 입학해서 겪는 일들을 1인칭 시점으로 엮어간 동화다. 교과서에서 아무리 찾아봐야 아는 글자라고는 서너 자밖에 안 되고, 사람들이 좀 어렵게 이야기라도 할라치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할 때가 많지만, 가방 메고 학교 가서 사랑반 수업 듣는 게 즐거운 펑티에난의 우습고, 가슴 찡한 이야기가 30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펑티에난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는 바보 아들을 남들에게 보이기 싫어하면서도 아들이 접어준 종이 카네이션을 몇 날 며칠 앞치마 주머니에 넣어두는 엄마가 있고, 바보와 자기 아들을 같은 반에서 공부시킬 수 없다는 딩통의 어머니도 있다. 펑티에난을 비난하는 학부모 앞에서는 당당하게 맞서 싸우지만 ‘백치’ 때문에 반 전체 평균이 낮아질까 봐, 시험날에는 학교에 나오지 못하게 하는 담임인 양 선생도 등장한다. 아이들 앞에서 용감하게 백치를 보호해 주지만, 점점 지쳐가면서 한 발짝씩 뒤로 물러서는 반장 린자린도 있다. 펑티에난과 동병상련인 절름발이는 늘 단짝이다.

그들 속에서 펑티에난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똑똑하든 아둔하든, 순수하고 착한 마음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십분 깨닫게 한다. 교사 출신으로 40여 편의 동화를 낸 여성작가 왕수펀이 마치 펑티에난 같은 아이들 속에라도 들어간 듯이 그려내는 생각과 행동에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다.

작가는 이 동화를 세상의 ‘바보’들을 대신해 ‘복수’해주려고 썼다고 한다. 누구에게 무슨 복수냐고? 잘 나지도 못했으면서 온갖 잘 난 척 다 하는 진짜 ‘멍청이’들, 사랑이 무언지 아무 것도 모르는 정말 ‘바보’들에게 "용기 있는 사랑은 이런 거야"라고 한 방 먹여주는 거다. 1997년에 대만에서 권위 있는 호서대가독(好書大家讀) 최우수 소년아동도서상과 중화문학 아동상을 동시에 받은 수작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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