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재정경제부가 "통합거래소 이사장 최종 후보 3명의 동시 사퇴에는 어떤 외압이나 갈등도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석연치 않은 흔적이 감지되고 있다. 돌연 사퇴한 당사자들이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외압이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는데다가, 후보추천위원으로 활동한 권영준 경희대 교수도 외압 가능성을 언급하고 나섰기 때문이다.재경부는 3명의 후보가 급작스럽게 동반 사퇴한 것은 ‘당사자들이 최종 후보가 모두 재경부 출신이라는 점을 부담스러워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동반 사퇴는 외압이 아니라 당사자 스스로의 판단이라는 것이다. 이헌재 재경부 장관 겸 부총리는 "정건용 전 산은 총재는 추천위원들의 만장일치 지지를 받았으나, 스스로 재경부 출신이라는 점이 부담스러워 사퇴했고, 이인원 예보사장도 거의 비슷한 시기에 그만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종 후보 3명중 1명인 강영주 증권거래소 이사장은 스스로 사퇴하지 않았다고 밝혀 재경부 설명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강 이사장측은 "현직 거래소 이사장은 후보대상이 안된다며 정부측에서 먼저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밝히고 있다. 정 전 총재도 "(산업은행 총재를 그만둔 뒤) 백수를 오래 해서 그런지 감이 떨어진 것 같다"며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그는 또 본지와의 통화에서 외압이 있었냐는 질문에 "그 얘기는 더 이상 하지 말자. 다 그렇고 그런 것 아니냐"면서 우회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따라 증권업계에서는 청와대가 당초 의중에 두었던 인사가 심사에서 탈락된 가운데 최종후보 3명이 모두 재경부 출신이어서 청와대에게 ‘거부’ 명분을 준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청와대가 비공식적으로 비토 의사를 전달했을 가능성이 가장 유력하게 점쳐지고 있다. 이헌재 경제부총리 취임 이후 청와대에서는 재경부가 주요 국영은행이나 금융관련 단체 인사에 이전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것에 대해 내심 불만을 쌓아오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서는 이번 사태는 청와대와 재경부의 갈등으로 이미 오래 전부터 예견된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통합거래소 이사장으로 민간 전문가 대신 관료 출신이 올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했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당초 올 6월로 예정된 이사장 공모가 11월로 늦춰진 것도 재경부가 자기 식구를 보내기 위해 민간 전문가를 배제했기 때문"이라며 "외압이 존재했느냐 여부도 중요하지만 원천적으로 청와대와 재경부의 힘 겨루기에서 유능한 민간 인재의 발탁 가능성이 배제된 것이 더욱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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