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과 세상/ 공화국의 몰락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과 세상/ 공화국의 몰락

입력
2004.11.27 00:00
0 0

율리우스 카이사르(기원전 100~기원전 44). 유럽 중남부 일대와 소아시아, 아프리카에 걸쳐 세계 최초의 대제국을 건설한 전성기 로마 최고의 통치자, ‘갈리아 전기’를 남긴 문인이자 웅변가, 두번의 밀레니엄을 지난 지금도 만인이 기억하는 ‘주사위는 던져졌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는 명언을 남긴 군인이다.2,000여년 로마사의 영광을 상징하는 이 인물을 위대한 정치가나 영웅으로 만이 아니라, ‘문제적 인간’으로 부를 수 있는 것은 그가 다수 권력자의 통치를 뜻하는 로마 공화정에 종지부를 찍은 ‘독재자’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 아시아를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는 너무도 낯설었던 이 정치체제(공화정이라는 용어는 기원전 9세기 주나라에서 실정한 여왕을 쫓아내고 섭정한 공화백(共和伯)에서 따온 것이긴 하지만)는 초기 로마왕이 지녔던 권력을 민회, 집정관, 독재관 등의 장치로 제한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귀족 공화정’이라는 한계를 가졌지만, 법으로 로마 민중에게 ‘행정관직에 입후보할 수도, 법률을 제안할 수도, 로마를 전쟁에 끌어넣을 수도 있는’ 무제한의 권력을 부여한 체제였다.

거의 700년 동안 유지됐던 그 공화정이 카이사르 때 무너지고 만다. 그는 무장해제를 압박하는 원로원의 명령을 무시하고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를 장악하고, 알렉산드리아를 정벌한 뒤 기원전 46년 공화정의 핵심인 원로원을 혁파했다. 역사서는 그의 양자 아우구스투스의 통치부터 로마의 정치체제를 ‘제정(帝政)’으로 기록한다.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작가인 톰 홀랜드의 ‘공화국의 몰락’(원제 ‘Rubicon’)은 바로 그 로마 공화정 마지막 100년의 역사를 그려낸 책이다. 공화정 말기의 상황만으로도 충분히 극적이지만, BBC방송용 역사 원고를 각색한 데다 여러 권의 소설을 쓴 저자의 글솜씨가 그 정치사태를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한 한 편의 읽을 거리로 탈바꿈 시켰다.

로마가 속주(식민지)를 약탈하는 대목을 ‘고속도로는 이제 징세인을 희생자들에게 더 빨리 파견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짐마차를 끄는 가축들은 징세 물품의 무게를 못 이겨 허덕대고, 군단 훨씬 뒤에 처져 발굽소리를 다각다각 내며 도로 연변을 지나가고 있었다’고 묘사하는 식이다. 물론 카이사르를 비롯해 비로마 출신으로 최고 권력에 오른 마리우스나 자유와 공화정을 옹호한 벼락출세자 키케로, 제국의 심장부에서 반란을 일으킨 스파르타쿠스, 이집트 여제 클레오파트라 등 숱한 영웅들의 야심과 갈등이 이야기의 날줄과 씨줄이다.

읽는 재미 못지않게 저자가 찾아낸 로마 공화정 몰락의 비밀도 신선하다. 공화정을 주축으로 ‘고대적 자유’를 구가하던 로마의 시민들은 세계 제국으로 성장하면서 잇따라 등장하는 영웅들의 활약에 젖어 들었고, 식민지에서 약탈한 거대한 부와 노예에 중독되었다.

나아가 저자는 공화정 말기의 로마 상황이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처지와 비슷하다고 여러 곳에서 에둘러 지적하고 있다. 검소와 소박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 경쟁과 영웅이라는 공동체 최고의 가치, 제3세계에서 거둬 들이는 막대한 부, 세계인들이 선망하는 공화국의 시민권… 로마는 대중의 인기를 등에 업은 ‘영웅’이 기존의 합리적인 가치를 전복하는 쪽으로 역사의 물꼬를 터 나갔고 그 선두에 카이사르가 서 있었다. 저자는 아마도 흥미진진한 이 로마이야기의 이면에서 "그러면 미국은?"이라고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먼 나라의 옛 이야기가 너무 낯설고 복잡하다면, 마침 이번 주 갑인공방에서 번역 출간된 ‘로마 공화정’(필립 마티작 지음·박기영 옮김), ‘로마 황제’(크리스 스카레 지음·윤미경 옮김)를 참고하면 좋겠다. 기원전 8세기 로마 건국부터 기원후 476년 서로마제국 멸망까지의 로마사를 수많은 사진과 그림을 곁들여가며 인물 중심으로 설명해 로마의 영웅들과 로마사 전체를 개관하기에 훌륭한 책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