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화두를 잡는다. 이번에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조계종 2,000여 수좌들이 일제히 참선수행을 하는 동안거(冬安居)가 시작된 26일(음력 10월 보름) 새벽 3시 부산 금정산 범어사 금어(金魚)선원. 사위는 고요하고 보름달만 풍경에 고요히 비치는데 수좌들은 벌써 예불을 올린다. 이윽고 두 줄로 나란히 앉아 화두 참구에 들어간 27명의 수좌들. 길게는 50년을 선방에서 보낸 노수좌부터 짧게는 5년의 신참까지, 저마다 얼굴에 결연함이 서려있다. 한 해 두 번씩 맞는 안거지만 그 엄숙함과 설렘이 다를 수 있으랴.3개월동안 그들은 산문을 나서지도, 말도 하지 않은 채 죽비 소리 하나에 의지해 새벽 2시에 일어나 밤 10시 잠들 때까지, 하루 12시간씩 좌선하며 정진한다. 전날 저녁 수좌들은 모두 모여 "규율을 잘 지키고, 잘 살아 견성을 하자"고 다짐했다.
한반도 등줄기가 힘차게 내달린 태백산맥의 마지막 줄기에 자리잡은 범어사는 해인사 통도사와 함께 영남 3대 사찰로 꼽힌다. 이 곳 선원은 일주문에 걸려있는 ‘선찰대본산(禪刹大本山)’이란 현판이 말해주듯 일찌감치 선풍(禪風)이 드높았다. 경허 용성 동산 만해 탄허 일타 광덕스님 등 선풍을 진작해온 종사들이 깨달음을 향해 정진하던 도량이 아니던가. 시대의 대종사 성철스님도 여기서 한 철을 살았다. 성철스님의 은사 동산스님이 주석해 "목숨을 바쳐 정진하라. 그러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견디고(堪), 참고(忍), 기다려라(待)"고 한 가르침이 살아있는 선찰이다. 그 선원이 올 동안거를 맞아 처음 일반에 그 모습을 공개했다.
대웅전 동쪽, 비로전과 미륵전 뒤편에 자리잡은 선원 앞마당에 서니 앞은 툭 터졌고, 삼면은 산봉우리가 아늑하게 감싸, 맑고 힘찬 기운이 넘친다. 동산스님은 어느 해 하안거 때 선원 동쪽의 대나무숲을 거닐다가 바람에 부딪치는 댓잎 소리를 듣고 홀연히 소식을 얻었다.
"외부인이 들어온 것은 1899년 선원 개원이래 처음입니다. 저 역시 안거 중에는 바깥나들이를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선원장 격인 유나 인각(仁覺)스님이 선방에 앉아 내력을 들려주었다. 선찰대본산으로 불리던 1900년대 초 범어사에는 모두 9개 선원에 100여명의 선객이 살았다. 10·27 법난(法難) 직후인 1982년에는 담을 둘러치고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지 않는 종신선원이 열리기도 했지만 세월이 무상해 지금은 금어선원 한 곳만 제대로 운영되고 있을 뿐이다.
"과거에는 기개가 살아 있던 수좌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발심(發心)하는 이가 적은 탓이겠지요. 선은 발심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보편적인 공부입니다. 이 공부는 출·재가가 따로 없어요. "
아침공양을 끝낸 수좌들이 일주문까지 빗질을 하는 것은 이 곳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수좌들은 다시 참선에 들었다. 50분간 좌선하고 다리를 풀기 위해 10분간 포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선원은 방선 포행시간이 따로 없다. 그래서 몇 시간이고 참선이 가능하다. 자유정진이 없고 모든 수좌들이 취침 공양 청소 예불 참선을 일사불란하게 한다. 음력 12월 초하루부터 석가모니가 성도한 여드레까지 8일 동안은 잠을 자지 않고 수행하는 용맹정진 기간이다.
오전 10시30분 대웅전 앞 금강계단에서 열린 동안거 결제법회. 조실 지유(知有)스님이 수좌들을 격려했다. "간화(看話)든, 염불이든, 기도든, 주력이든 선심(禪心)에 도달하면 깨달은 도인인 것입니다. 공중에 떠 있는 달을 보기 위해 손가락에 의지하든, 막대기를 통해 보든 무슨 상관입니까. 중요한 것을 그것을 통해 마음을 봐야 합니다. 학문이나 지식으로 보기 때문에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 법회가 끝난 뒤 수좌들이 선원으로 들어가자 문이 굳게 닫혔다. 그 문에 올 겨울 처음 들이닥친 차가운 겨울바람이 소리를 내며 부딪친다. 3개월의 안거가 끝나는 내년 정월 보름, 이들은 어떻게 변해있을까.
범어사(부산)=남경욱기자 kwna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