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막차를 탔다가 잠이 드는 바람에 종착역을 지나친 두 사람. 대학 나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지만 몸 담았던 회사마다 부도 맞는 바람에 막 아홉번째 실직을 한 서른 여섯 살 남자와, 성악가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경제적으로는 남부럽지 않게 사는 쉰 다섯살 여자. ‘저 밝은 지상에서라면 (서로)쳐다도 보지 않을’ 두 사람이지만 캄캄한 벌판에 내려 선 지금은 먼 찻길까지 어쩔 수 없이 동행해야 할 처지다. 이청해씨의 네 번째 소설집 ‘악보 넘기는 남자’(문이당 발행) 속의 단편 ‘두 사람’은, 그 길에 선 두 사람의 이야기다.저 남자 부랑자는 아닐까, 여자는 두렵지만 혼자 잡풀 덤불에 진창길 자갈길을 헤쳐갈 엄두가 안 난다. 여자는 마지못해 남자의 부축을 받으며 걷는데, 이런 저런 대화로 아픔의 한 자락씩을 나눈 끝에 두 사람은 성적 긴장과도 같은 묘한 떨림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어스름 불빛에 비친 남자의 추레한 행색을 보고 여자는 새삼 움츠러들고, 남자 역시 여자의 희끔한 귀밑머리를 보고선 어깨를 부르르 떤다. 드디어 큰 길. 여자는 마주 오는 택시를 잡더니 도망치듯 떠나버리고, 남자는 상처 받은 자존심에 쓰게 웃는다.
‘사람은 사람에게 우연히 영혼을 바치는 존재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걸치고 있는 조건들이, 의식이, 현실적인 계산이 늘 그것을 가로막았다. 이런저런 얼개를 빼버리면 결국 서로 기대고 비빌 수밖에 없는데도 극한상황을 벗어나자마자 본능처럼 불신의 옷을 도로 입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이란 동물이 직조해 낸 최후의 갑옷인가’
책에 든 7편의 단편들은 모두 두 사람의 만남을 모티프로 삼았다. 사뭇 다르지만, 들여다보면 별반 다를 것 없는 ‘두 사람’. 작가는 작위적이기까지 한 극단적 대비와 그 이면을 통해 그 ‘차이’가 빚어내는 삶의 희비극과, 그 희비극에 일희일비하는 삶을 보여주고 있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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