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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275> 로스 맥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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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275> 로스 맥허터

입력
2004.1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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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11월27일 기네스북 창간편집인 로스 맥허터가 미들섹스 엔필드의 자택 부근에서 에이레공화군(IRA)에게 피격돼 사망했다. 50세였다. IRA는 그 얼마 전에도 맥허터의 아내 로즈머리를 납치하려다 실패한 바 있다. 로스 맥허터가 IRA의 표적이 된 것은 런던에서 폭탄 테러를 벌인 IRA 단원들에게 개인적으로 현상금 5만 파운드를 내걸었기 때문이다. BBC방송의 ‘기록을 깨는 사람들'(Record Breakers)이라는 프로그램 사회자이기도 했던 로스 맥허터는 영국의 대표적 극우파 가운데 한 사람으로, 북아일랜드 분리운동에 단호한 반대 입장을 보여왔다.로스 맥허터의 쌍둥이 동생 노리스 맥허터도 로스와 똑같은 정치적 입장을 지니고 있었다. 단거리 육상선수 출신으로 BBC 텔레비전의 육상 해설가로 활동하기도 한 노리스는 로스와 함께 ‘자유협회'(Freedom Association)라는 그럴싸한 이름의 극우 정치단체를 만들어 북아일랜드 분리운동에 호의적인 좌파세력과 격렬히 싸웠다. 노리스는 2004년 4월19일 심장마비로 죽었다.

신문기자의 아들로 런던에서 태어나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처럼 저널리즘 경력을 쌓은 맥허터 형제는 가차없는 극우 행보로 영국 안팎에서 악명을 얻었지만, 기네스북은 그 악명을 다소 상쇄시켜주었다. 1954년 기네스 양조회사의 상무이사 휴 비버경(卿)은 맥허터 형제에게 인간과 자연의 경이로운 기록을 담은 책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그 유명한 기네스북이 기획되는 순간이었다. 기네스북은 맥허터 형제의 책임편집으로 이듬해인 1955년 8월27일 첫 판이 나왔다. 로스 맥허터는 1975년 사망할 때까지, 노리스 맥허터는 1985년까지 기네스북의 편집인으로 일했다. 기네스북은 1970년대 이후 세계적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았고, 창간 이후의 총판매고가 1억 부에 이르러 그 자체가 기네스북에 올랐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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