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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강이, 나무가, 꽃이 돼 보라' - 日음지의 '따뜻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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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강이, 나무가, 꽃이 돼 보라' - 日음지의 '따뜻한 삶’

입력
2004.1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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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이란 나라는 반쪽에 불과하다. 2차 세계대전 패전국에서 경제대국으로 성공적 변신을 꾀한, 일본의 양지만을 보고 그게 일본의 전부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일본을 제법 안다는 이들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강이, 나무가, 꽃이 돼 보라’가 보여주는 일본은 무척 낯설다. 보기 드물게 양지가 아닌 음지의 일본을 고백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보고 들을 일본인들의 삶과 목소리는 주류에서 한참 비껴 있다. 극우 보수주의의 흐름을 거스르고 스스로 전쟁의 과오를 참회하는 양심들, 존재의 뿌리를 고집하는 아이누 같은 소수민족과 재일동포들, 산업화에 희생된 자연환경을 지키고자 하는 환경운동가들 등등. 일본이 평화를, 인간의 정체성을, 그리고 숲과 바다를 약탈하며 간과해온 희생자이자 고발자이다. 수적으로 소수이고 그래서 목소리를 내도 다수에 묻혀버린 까닭에, 그들의 일본은 이 책의 원제인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일본(The Japan We Never Knew)’이었다.

저자들은 2년여에 걸쳐 오키나와부터 홋카이도까지 일본의 남북을 가로지르며 평화운동, 인권운동, 환경운동을 벌이는 풀뿌리운동가들을 찾아 다녔다. 활동가들의 경험과 생각을 빌어서 두 저자는 근대화 과정 속에서 일본이 스스로 부인한 역사적, 문화적, 생태적 전통을 회복하고 지켜나가려는 다양한 움직임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있다.

우선 100만 명에 달하는 재일동포 문제가 눈에 띈다. 스스로 선택한 삶이 아니라, 어찌해볼 수 없는 식민지배라는 역사의 산물이기 때문에 ‘자이니치(在日)’로 살아가는 그들의 핍박과 설움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인종차별에 대한 대응으로 국적을 바꾸고 일본인으로 동화하는 길을 택하는 이도 있지만, 차별에 더욱 치열하게 저항하는 이들도 있다. 한국 태생으로 ‘외국인등록법’에 반대해온 목사 이인하씨도 그 중 한명. 그는 열 네 살 아들의 외국인 등록갱신을 잊어버려 그 아들을 전과자로 만든 쓰라린 경험을 털어놓는다. 그는 "외국인등록법은 한국, 대만 같은 예전 식민지 출신자들이 헌법에 명시된 기본적 인권을 주장할 권리조차 박탈하는데 있다"고 문제제기를 한다.

‘민족적 동일성’이라는 환상을 빌미로 일본 정부가 고유의 말과 문화를 앗아가며 생존을 위협한 대상은‘자이니치’뿐만이 아니다. 일본은 사할린 토착민 울타족, 홋카이도 원주민 아이누 같은 소수민족에 대해 동화정책을 펼치며 그들의 문화를 부인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지역적 뿌리를 잃는 위기를 자초했다. 다행히도 울타족으로 유일하게 일본에 살고 있는 기타가와 아이코씨나 아이누 공동체 지도자들은 자발적으로 뿌리를 찾고 있다.

근대화가 곧 산업화를 의미하는 과정을 거쳐오면서 일본은 인권 이외에 자연을 잃어버렸지만,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자연환경을 생각하는 운동도 활발하다. 미 해군들이 거주할 주택을 건설하기 위해 도시 면적의 15%에 해당하는 숲을 밀어버리려는 중앙정부의 시도에 맞선 소도시 즈시 시민들의 용기 있는 녹색민주주의나, 제초제나 화학비료를 써 더 많은 수확을 거두는 대신 생명을 살리는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가와구치 요시카즈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일본사회 내부가 무시하기 쉬운 비주류의 다양한 프리즘을 포착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울림이 깊다. ‘주변인’으로서 일본을 들여다볼 수 밖에 없었던 저자들의 약점이 오히려 강점으로 승화하는 대목이다. 환경보호운동가로 활동하는 데이비드 스즈키는 일본계 캐나다인이고, 일본에서 나고 자란 인류학자 오이와 게이보는 나이 서른에야 자신의 아버지가 일본에서 핍박 받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단일성의 신화는 무너지고 있다"고 단언하는 두 저자는 사회의 변화를 진지하게 모색하는 다양한 풀뿌리운동에서 일본의 미래를 엿본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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