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업계에도 스타 CEO 시대가 개막됐다. 이용경 KT 사장, 김신배 SK텔레콤 사장, 남중수 KTF 사장, 남용 LG텔레콤 사장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통신업계에 독특한 리더십과 경영 스타일로 위상을 확고히 하고 있다. 그들의 발언과 일거수일투족에 주가가 출렁일 정도가 됐다. 치열한 검증을 거쳐 시장의 스타로 떠오른 이들의 면면을 알아본다.
■ 김신배 SK텔레콤 사장/ 늘 새로운 길 찾아 나서는 ‘개척자’
우리나라 통신업계의 거함(巨艦), SK텔레콤을 이끄는 김신배(50) 사장에게는 수년 전부터 ‘준비된 최고경영자’(CEO)라는 칭호가 붙어다녔다. 학력이나 경력, 경영수완 어느 면에서나 SK텔레콤의 차세대 CEO 감으로 거론되어 왔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와 KAIST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한 그는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교 경영대학원(와튼 스쿨)에서 경영학석사(MBA)를 이수했다. 1995년 SK텔레콤의 전신인 한국이동통신에 입사한 이후에는 사업전략이사와 수도권 지사장, 전략기획부문장 등 핵심요직을 거쳤다.
김 사장의 경영 능력이 두각을 나타낸 것은 신세기통신 인수 때의 일이다. 그는 2000년 1월 신세기통신 전략기획부문장을 맡아 SK텔레콤과의 통합작업을 진두 지휘했다. 피합병사의 직원들은 합병사 출신의 경영자에 대해 ‘점령군’이라는 인식을 갖기 쉽지만, 김 사장은 특유의 ‘화합’과 ‘인화’를 내세우는 경영 철학을 기반으로 신세기통신 직원들을 다독여 순조로운 합병을 이뤄냈다.
통신 업계에는 수많은 스타 CEO들이 있지만 신규 사업에 대한 감각은 김신배 사장을 따라올 사람이 없다. SK텔레콤 신사업의 중심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98년 국제전화사업자인 SK텔링크를 출범시켜 3개월간 직접 경영을 맡았으며, 휴대폰 단말기 사업을 통한 경쟁력 강화를 위해 SK텔레텍 설비를 주도했다. 싸이월드 인수를 통해 SK커뮤니케이션즈를 국내 정상급 포털로 키웠고, 하나로통신 지분 참여를 통해 유선사업으로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몽골과 베트남 등 해외 사업 진출도 그의 작품이다. 최근에는 휴대폰을 이용한 모바일 전자상거래와 위성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에 진력하고 있다.
■ 이용경 KT 사장/ 위기 회피않는 결단력의 ‘지휘자’
KT 이용경 사장의 좌우명은 ‘닥치는 대로 살자’이다. 언뜻 엉뚱하게 들리는 이 좌우명을 그는 ‘내일의 일은 내일 걱정하고, 지금 당장은 눈앞에 닥친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의미로 풀이한다. 그는 실제로 재계 서열 5위의 거대기업 KT의 앞 길에 닥친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과감하게 해치우는 결단력과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이 사장은 1967년 미국에 건너가 24년간 지내다 91년 귀국해 KT 연구소에 입사했다. UC버클리대 전자공학과 박사 출신으로 미국 AT&T 산하 벨 연구소에서 광통신 분야 전문가로 명성을 쌓은 터였다.
그는 KT 선로기술연구소 책임연구원, 통신시스템개발센터 소장 등으로 현장을 체험하면서 KT가 뼈를 깎는 자기 변신을 하지 않으면 치열한 통신시장에서 살아 남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을 갖게 된다. 그는 2002년 KT 사장에 선임되자 마자 곧바로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KT의 구석구석에 대변혁의 메스를 들이댔다.
지난해 KT는 5,500명의 직원을 명예퇴직 형식으로 내보냈다. 이에 따라 4만 3,000명에 이르던 직원이 3만8,000명으로 대폭 줄었다. 일부 임직원들은 KT가 더 이상 안정된 기업이 아니며 살아 남기 위해서는 자기혁신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 사장은 "100년 뒤에도 살아 남으려면 지금 당장 바꿔야 한다"며 개혁을 밀어붙였다. 전문임원제를 도입해 외부임원 수혈을 통한 체질개선을 추진하고, 연공서열을 타파하는 발탁인사를 단행했다. 또 ‘갑(甲)’의 위치에서 누리던 기득권을 타파하기 위해 윤리경영을 정착시키고 내부 신고제를 도입했다.
KT는 지난해 사상 최대인 11조1,000억원의 매출과 8,0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명예퇴직 비용으로 8,000억원을 지출하지 않았다면 당기 순이익은 2배로 늘었을 것이다. 내부를 정리한 이 사장은 2010년까지 ▦차세대 이동통신 ▦홈네트워킹 ▦미디어산업 ▦IT 서비스 ▦디지털 컨텐트 등 5대 사업을 육성한다는 ‘2010 비전’을 밝혔다.
피말리는 경쟁의 세계에서 벗어난 그의 개인적 삶은 나눔과 봉사에 충실하는 것이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는 주말이면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서 주차요원 일을 거르지 않고 있다. 또한 명절이면 부득이하게 받은 선물을 모아 불우이웃에 기부하는 선함이 보다 그 다운 모습이다.
이민주기자 mjlee@hk.co.kr
■ 남중수 KTF 사장/ 큰 그림 속에 완벽 추구 ‘승부사’
올해 국내 경영인 가운데 가장 많은 조명을 받은 최고경영자(CEO)로 KTF 남중수(49) 사장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2004년 벽두부터 ‘굿타임 경영’이라는 화두를 던지며 마케팅 시장을 선점했고, 뒤이어 혼전을 거듭한 이동통신업계의 번호이동성 대전(大戰)에서 가장 많은 가입자를 끌어오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그가 KTF의 경영을 맡은 지난해초 1,000만명 수준이던 가입자는 최근 1,200만명에 육박하며 SK텔레콤의 독주에 제동을 걸고 있다.
남 사장의 경영 스타일은 ‘깊이 생각한 후 신속히 결정하고, 결정되면 바로 실행으로 옮긴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또한 큰 그림을 그리면서도 세부적으로는 완벽을 다지는 ‘대관세찰’(大觀細察)을 추구한다. 주변에서 ‘한 수 앞을 내다보고 움직인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정해진 목표를 무섭게 몰아 붙이는 추진력, 그리고 본질, 신뢰, 인재육성으로 요약되는 경영철학 역시 이론과 실천 양면에서 돋보인다. 모기업 KT의 민영화 작업과 경영혁신 과정에서 드러난 리더십과 IMT-2000 사업권 획득, 해외 DR 발행 등에서 보여준 승부사적 기질 또한 그에 대한 수식어를 더욱 화려하게 만들었다.
그는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카리스마’를 꼽는다. 이 단어는 흔히 권위적인 리더십으로 통하고 있지만 원래 라틴어의 어원은 ‘봉사와 은혜’를 뜻한다. 그래서 남 사장이 생각하는 카리스마는 ‘진실과 솔선으로 직원과 소비자를 움직이는 힘’이다. 하루 일과를 새벽에 시작한다거나, 명절을 앞두고 지방 곳곳을 돌아다니며 통화 품질을 확인하고, 고객의 불만 사항을 직접 챙겨 해결책을 지시하는 그의 모습이 바로 ‘남중수식 카리스마 경영’의 단편이다.
■ 남용 LG텔레콤 사장/ 모바일뱅킹 선풍 주도한 ‘선구자’
올해는 남용(56) LG텔레콤 사장이 경영자로 보낸 세월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해가 될 것이다. LG텔레콤의 숙원이었던 ‘600만 가입자’를 기어코 이뤄냈기 때문이다. 현재 LG텔레콤의 총 가입자 수는 596만여명. 늦어도 12월 중에는 600만을 돌파할 전망이다. 남용 사장에게는 지난 6년간 어깨를 짓눌렀던 큰 짐을 벗는 벅찬 순간이기도 하다.
LG텔레콤의 상승 무드는 지난해 통신업계에서 최초로 시작한 모바일뱅킹(뱅크온) 사업이 150만명이라는 경쟁업체를 압도하는 가입자를 확보하며,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모두들 이 사업의 가능성에 의문을 갖고 주저하는 사이 남 사장이 승부수를 던진 것이 적중한 것이다.
IMT-2000으로 상징되는 차세대 이동통신 사업자가 ‘동기식’과 ‘비동기식’으로 갈리는 우여곡절 속에서도 남 사장은 경쟁사가 외면했던 ‘비동기식’을 선택하는 안목을 보였다.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결정을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봤지만, 오늘날 SK텔레콤과 KTF의 비동기식 IMT-2000(WCDMA)이 표류를 거듭하면서 그의 결단은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남 사장은 경영 스타일에 있어 ‘행동하는 전략가’로 평가 받는다. 경제학도(서울대 경제학과)답게 주요 경영사안을 명확한 분석과 수치로 제시해 놓고 토론하기를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머리 싸움’에만 능한 책사(策士)가 아니다. 오히려 타당성이 확인된 목표에 대해서는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강력하게 밀어붙인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다. 이런 면모는 ‘현장 경영’이라는 리더십으로 나타난다. 남 사장이 통화품질 개선을 위해 주말마다 전국 방방곡곡의 산행에 나서 직접 전화를 걸어본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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